평신도 입장에서 본 공적 책임의 수행
양 혁 승 교수
(연세대학교 경영학)
교회와 기독인의 사회문제들에 대한 공적·사회적 책임수행과 관련하여 평신도로서 평소 생각해온 바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1. 왜 교회와 기독인의 공적 책임을 고민해야 하는가?
교회와 기독인이 사회 내에서 공적 책임을 수행해야 할 당위성과 필요성을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신학적 관점에서는 모든 공적 영역이 우주와 역사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 하에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初臨)과 함께 이미 도래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나가야 할 영역이다. 따라서 교회와 기독인은 마땅히 그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선교적 관점에서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함께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제반 공적 영역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삶의 고민을 나누고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공통분모로 삼아 그들과 만날 때 그들과 복음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될 수 있다. 복음을 그들의 일상적 삶의 이슈를 다뤄나가는 대안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복음을 훨씬 더 효과적으로 그들에게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현실적 관점에서는 사회생태계 속에 뿌리를 내리고 생존해가는 모든 기관들(공적 사적 기관을 포괄)은 어떤 형태로든 그것과 연계성을 갖고 그것들이 생존할 수 있도록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사회생태계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 기관이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을 순환적으로 제공받게 된다.
일례로 사회적 공기(公器)인 기업에 대해서 사회적 책임(윤리경영 투명경영 친환경 경영 고용친화적 경영 등)에 대한 요구가 갈수록 거세어지고 있다. 경영의 주변적 이슈에 머물러 있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경영의 핵심적 이슈로 받아들인 선도기업들은 제반 경영활동 과정에 경제적 수익성 환경적 건전성 사회적 책임성 등을 통합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기업의 가치를 증진시키는 쪽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교회와 기독인의 공적 책임 수행에 대한 사회적 요청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지속적으로 있어 왔다. 그러한 사회적 요청은 보통 두 가지 경우에 제기되어왔던 바 시대적 상황이 암울할 때 교회와 기독인들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찾으려는 경우가 그 중 하나요 교회와 기독인이 공적 책임에 대해 소홀한 채 교세확장과 자기이익 추구에 주력할 때 교회와 기독인이 제자리를 잡아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제기하는 경우가 다른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한국교회와 기독인을 향한 공적 책임수행을 요청하는 것은 어느 경우에 해당하는지 냉철하게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2. 교회와 기독인은 어떠한 방식으로 공적 책임을 수행해야 하는가?
첫째는 기독교 가치관과 섬김의 리더십을 갖춘 인재들을 육성하고 훈련하여 배출함으로써 각자 부르심의 현장에서 공적 책임을 수행해가도록 하는 길이다. 사회 각 영역의 중요 직책을 맡은 사람들 중에 기독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가 보다는 그 분들이 올바른 기독교 가치관과 리더십으로 잘 훈련되어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 여부가 중요하다.
교회 내에서 주요 직분자로 임명 받은 분들이 사회에서 올바른 리더십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명이 날 경우 교세의 확장과 교인들의 사회 내에서의 활발한 진출이 선교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복음전파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질적 성장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양적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는 그 동안 우리 사회를 제대로 섬길 수 있는 자질과 인격을 갖춘 리더들을 얼마나 배출했는지 되돌아보고 그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지배하는 공동체는 어떠한 가치와 원리에 의해 운영되며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교회공동체 안에서 실험하고 실천함으로써 세상에 유용한 모델을 제시하는 길이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실현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그 안에서 훈련이 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 안에 체화(體化) 된 가치관과 섬기는 자세로 세상을 섬길 때 하나님 나라가 누룩처럼 확산되어 나갈 것이다.
교회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나서서 발언하고 개혁운동의 전면에 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직은 한국의 기독교가 정치와 사회를 책임질 수 있는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으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그것을 실현하는 원리를 실천함으로써 세상에 실천적 모델을 제시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세속적 가치와 세상적 원리가 교회공동체 내에 널리 퍼져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교회공동체 내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때이며 내부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혁파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교회공동체 내에서 실질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스스로를 개혁할 수 있는 자정능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판단된다.
교회의 직접적 사회참여는 기독교 가치에 비춰 사회가 크게 일탈함에 따라 중대한 시대적 요청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종의 기독교 사회책임운동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NGO들을 만들거나 후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중대한 시대적 요청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직접적으로 사회적 이슈에 관여하는 경우에도 권력과 결합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사회의 제도들을 개혁하는 차원에서 주목하고 경계해야 할 점은?
사회과학 이론들은 관련 영역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현상들—표면적으로는 규칙성이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임—의 저변에서 그러한 현상들을 발생시키는 메커니즘을 포착하고 그 메커니즘의 작동원리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메커니즘의 작동원리를 활용하여 기대하는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정책을 수립하고 그 정책을 뒷받침할 제도들을 설계하고 실행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 내에서 일정한 효과를 기대하고 채택한 제반 제도들은 나름대로의 이론적 기반 위에 세워졌다고 볼 수 있다.
한편 특정한 이론은 그 기저에 일정한 패러다임(paradigm)과 전제(presuppositions)을 두고 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볼 때 어떠한 패러다임과 전제를 가지고 보느냐에 따라 그에 상응하는 규칙성과 질서가 보이게 되고 그에 조응하는 이론들이 도출되게 된다. 요컨대 제도화된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들은 그 기저에 놓여 있는 제도의 운영원리 즉 이론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되고 제도의 운영원리 즉 이론은 그 기저에 놓여 있는 패러다임과 전제에 의해 규정된다.
예컨대 사적 소유와 시장제도에 기초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완전경쟁이 가능하도록 조건만 만들어지면 ‘보이지 않는 손’(시장의 가격결정 메커니즘)에 의해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되고 활용된다는 아담 스미스의 이론에 기초해 있으며 그 이론은 인간이 자기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임을 전제로 한다.
교회가 공적 책임을 감당해가는 과정에서 많은 제도들을 가지고 씨름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들과 시행을 계획하고 있는 제도들에 대해 검토하고 그에 대한 입장과 대안을 제시하게 될 때 해당 제도들의 본질과 성격을 제대로 이해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제도들이 기반하고 있는 이론적 근거와 그 이론의 기저에 놓여있는 패러다임과 전제들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패러다임과 전제들이 성경에서 얘기하는 패러다임이나 전제와 상충되는지 여부를 가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근본적으로는 기독교 패러다임과 전제들에 부합한 이론체계와 그에 기반한 제도들을 제시해야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들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해도 일부 현실 제도들을 수단적 차원에서 허용할 수도 있다.
다만 자본주의 경제체계처럼 수단적 효용성 때문에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인정해야 할 원리와 그 기저에 있는 가치 및 전제를 기독교 가치와 전제의 상위에 두는 오류는 범하지 않아야 한다. 세속적 가치와 이념이 교회 내에서조차 지배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에 대해서는 마땅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기독교적 가치를 정치적 이념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하거나 그러한 정치적 이념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권력지향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성에 대해서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 가치는 어떠한 정치적 가치보다 상위의 가치이다. 기독교인이 기독교적 가치를 내세우면서 특정한 정치적 가치와 이념에 집착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기독인과 교회는 기독교적 가치와 삶의 원리에 깊이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다.
4. 교회의 공적 책임 수행에 장애가 되는 요소는?
1) 교회의 보수화
교세가 커지고 교회의 구성원들 중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상위계층에 속하는 구성원들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교회의 보수화가 급격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사람들이 보유하고 있는 물질적 토대가 그 사람들의 사유방식을 규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하나님 나라의 모형이 되어야 할 교회에서까지 적용된다면 심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이기적 자아를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로 매 순간 결단하며 실천하는 사람들이 기독인들이고 그들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자산들을 가지고 청지기적 자세로 이웃들과 사회를 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기적 자아와 이익보호를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앞세우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가 가장 보수적인 그룹을 대표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는 현실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2) 생활과 분리된 예배당중심의 신앙생활
성도들이 모이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활발하게 교제를 나누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며 나누는 과정을 통해 영적 도전과 격려를 받고 생활현장 속에서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공급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점에서 개별 지역교회는 성도들이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원리를 배우고 적용하는 훈련의 장이며 생활현장은 우리들이 말씀대로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야 할 소명의 장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현실은 생활현장의 삶을 소홀히 하면서라도 교회의 일에 헌신할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믿음과 헌신의 척도로 삼고 있다. 교회 일이 곧 하나님의 일이며 일상생활은 세속적인 일이라는 잘못된 이원론적 사고가 성도들 사이에 팽배해 있으며 그 결과 말씀의 원리가 생활현장에서 실천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세속적 원리가 교회 내에 들어와 적용되는 것에 대해서조차 무뎌져 있다.
3) 잘못된 신앙관: 자기중심적 신앙관
한국기독교가 급격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기복신앙으로 불리는 자기중심적 신앙관이 기독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복신앙적 행태는 한국교회 내에 매우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많은 기독교 의례들이 그러한 방향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그 분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신다면 이생의 자랑거리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풍성하게 채워주심을 통해서라기보다는 자기자신의 자아를 내려놓고 당신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자들을 통해서 당신의 능력을 행사하심으로써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역사와 우리 개개인 삶의 주권자이심을 실제적 의미로 고백하는 하나님중심적 신앙관에 기초하여 개인적으로 혹은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분의 인도를 받으며 그 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의 원리와 원칙을 따라 살 때 그 삶이 곧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게 될 것이다.
4) 제도화된 교회의 세속화와 자기보존논리
교회의 본질적 특성이 제대로 살아날 수 있도록 그에 적합한 제도와 규정을 도입하는 것은 유기체적 공동체가 질서 속에서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있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어떠한 제도나 조직이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해당 제도나 조직 자체의 존속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그 결과 본래의 취지와 어긋난 방향으로 발전되는 경향이 있다.
교회의 본질적 모습을 상실한 제도화된 교회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보다는 세속적 가치나 역사적으로 발전해온 각종 제도 및 규정 등이 교회운영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 물량주의나 성장지상주의와 같은 세속적 가치들이 교회를 뒤덮게 되고 교회 내 의사결정과정을 규율하는 각종 규정 등이 본래의 취지를 상실한 채 기계적으로 적용됨으로써 교회의 본질적 특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게 된다.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사실 그 자체 때문에 교회가 거룩하다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그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질 때 비로소 거룩한 공동체가 된다. 이를 뒤집어보면 제도화된 교회가 사람들의 뜻과 세속적 원리를 따라 운영될 때 그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세속적 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런 면에서 제도화된 교회는 끊임없이 자신을 개혁함으로써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야 하며 또한 개혁은 일회적 과정이 아니라 지속적 과정이 되어야 한다.
5. 공적 책임수행을 촉진하기 위해 한국교회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1) 교회 패러다임의 전환: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
공적 책임수행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려면 ‘모이는 교회’ 패러다임으로부터 ‘흩어지는 교회’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모이는 교회’ 패러다임 하에서는 교회가 성도들 안에 있는 제반 자원(돈 역량 시간)을 모아 교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공적 책임의 일부—예 복지기관 지원 소외계층 지원 등—을 감당하려는 모양을 띠게 된다.
‘모이는 교회’가 잘못되었다기보다는 제대로 ‘흩어지는 교회’가 되기 위한 목적의식을 명확히 한 조건 하에서 ‘모이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모이는 교회’는 ‘흩어지는 교회’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서 그 중요성을 인정받게 된다. ‘흩어지는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하지 않을 때 ‘모이는 교회’는 개교회주의 물량주의 성장지상주의 등에 매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흩어지는 교회’ 패러다임 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일하시는 다양한 공적 영역으로 흩어져 들어가 책임적 자세로 ‘주께 하듯’ 그 영역을 섬기는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흩어지는 교회’의 장점은 공적 책임을 수행함에 있어 하나님의 백성들이 삶의 현장에서 확보하고 있는 세상과의 넓은 접촉점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교회 단위로 이루어지는 공적 책임 수행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과 성도들이 공적 영역에서 책임을 수행할 주체로서 자신들을 인식할 때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려는 자극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고립된 교회 성(城)을 세워놓고 관심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 “이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라고 외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받으며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과 접촉한 사람들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감으로써 확장될 수 있다.
2) 교회운영 패러다임의 전환: 피라미드형에서 역 피라미드형으로.
대부분의 한국교회 내에서 교인들은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러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주도적으로 사역을 이끌어가지 못하고 있다. 이는 목회자와 당회 중심의 교회운영 관행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한국교회 내에서 목회자의 권위와 발언권의 무게는 교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교회에서 거의 절대적이다. 규모가 크고 작음을 떠나 교회 내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분별은 담임목회자의 몫인 것처럼 취급된다. 목회자나 일반성도가 교회 내에서 맡은 역할이 다를 뿐 모두가 함께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성장해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담임목회자는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일 외에도 교회운영의 거의 전 영역에서 절대적인 발언권을 행사하고 성도들은 목회자의 뜻을 따르는 수동적 위치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교회는 당회가 중심이 되어 교회가 운영된다. 당회가 교회의 정책적 방향을 결정하고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마땅한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의사결정이 너무 당회에 집중되어 있어 성도들의 주도적 참여와 적극적인 역할이 사장된다. 성도들이 교회 내에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교회공동체의 책임적 지체로서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따라 교회의 내적 건강성은 매우 취약한 상태에 머물게 되며 목회자 개인이나 당회의 잘못된 판단에 의해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상처를 입게 된다.
교회는 교인들이 공적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기독인으로 성숙되어가는 훈련과 실천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운영의 패러다임에서도 근본적인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피라미드형 교회운영 패러다임으로부터 역피라미드형 교회운영 패러다임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조직운영 패러다임의 전환은 인적자산을 경쟁력의 원천으로 삼는 선진기업조직들 사이에 점차 확산되고 있다. 피라미드형 조직운영에서는 현장근무자들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업무를 위임하지 못하고 대신 관리자들이 계획하고 지시하는 바를 수행하는 역할로 현장근무자의 역할을 한정한다. 이러한 조직운영 패러다임 하에서는 현장근무자들의 자발성과 주도성이 살아나지 않고 그들 안에 내재되어 있는 역량도 발휘되지 못한다. GE의 회장이었던 잭 웰치는 이런 조직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병폐로서 “직원들이 상사를 향해서는 얼굴을 고객을 향해서는 엉덩이를 내밀게 된다”고 꼬집었다.
반면 역피라미드형 조직운영 패러다임에서는 현장근무자들 안에 내재되어있는 잠재역량에 신뢰를 바탕으로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현장근무자들이 주인의식을 가지고 고객을 만족시키며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며 나가도록 격려하고 뒷받침해준다. 이러한 조직에서 관리자들은 일선에 있는 근무자들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지도해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사역의 주체자로 성장해가고 더 나아가 자신들이 속한 공적 영역에서 책임을 다하는 성숙한 기독인으로 성장해가려면 교회가 그들의 영적 성숙을 체계적으로 도우면서 역피라미드형 교회운영을 통해 그들이 교회 내×외적인 사역들을 주도적으로 수행해갈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적 책임 차원에서 교회와 기독인이 적용하고 지켜내야 할 기독교 가치들과 현실세계를 분석할 때 사용할 성경적 관점과 성경적 삶의 원리들을 교인들이 체질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3) 교회와 기독인의 자정노력 강화
개인과 교회의 인격(character)이 복음의 능력에 의해 실제적으로 변화될 때 이 땅에서 빛과 소금으로 드러나게 되며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게 됨. 복음의 능력에 의해 스스로의 인격이 변화되는 경험을 갖지 못하고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할 때 결코 세상을 향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다.
6. 교회와 기독인의 공적 책임 수행과정에서 견지해야 할 자세는?
우선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사는 기독인들과 교회에 주신 문화명령의 방향과 내용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안고 가야 한다. 성령하나님의 조명 하에 시대적 상황변화에 맞도록 성경말씀을 재해석하고 공적 책임수행의 방향에 대한 지침을 이끌어내야 한다.
목표와 과정과 동기(motive) 중 어느 하나라도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친히 성취해가시는 능력에 뿌리내리지 않으면 안 되리라 생각한다. 성령하나님의 실제적 인도하심을 간과한 채 목표와 가치만 부둥켜안고 갈 때 자기 힘과 자기 방식으로 공적 책임을 수행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기 의(義)를 드러내는 결과로 귀결될 우려가 매우 크다. 그런가 하면 동기에 대한 점검을 게을리 할 경우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하여 시작한 사역이 자신들의 내재적 욕구와 결합하는 위험성에 노출되게 된다.
해당 영역에 대한 전문성과 안목을 키워야 한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것과 같이 공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그것들을 성경적으로 조명하고 해석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섣부르게 공적 영역의 사안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를 위해 해당 영역의 전문가들과 비판적 대화가 가능한 채널과 장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판단된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치환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오류에 유의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로 인해 나타나는 문제를 개개인의 문제로 돌리게 될 때에 원자적 오류(atomistic fallacy)에 빠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