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강연>


죽음의 실존과 그 의미

김대동 목사(분당구미교회/포럼 목회아카데미 교육원장)

1. 죽음의 현실

① 내몰리는 죽음

오늘날 죽음은 우리의 현실 속에서 타부(taboo)시 당하고 있다. 죽음을 타부시 한다는 말은 잠재의식이나 무의식적으로는 죽음을 인식하고 또 한편 죽음을 불안해하면서도 그러나 실상은 의식적으로 죽음을 멀리하고 기피하고 심지어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조차 꺼리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현대사회는 사람이 죽었을 경우에 죽음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내몰고 있고 그래서 객관화 물상화 상업화하여 전문 직업인에게 맡겨 버리고 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생활 관습에서 죽음을 터부시하는 현상은 아주 많으며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집단적으로도 죽음의 현실에 대하여 거부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경우도 우리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지금 한국사회는 죽음을 죽여버렸다.

김열규 교수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는 책의 서문에서 “죽음을 잊으면 삶도 덩달아 잊혀진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죽음을 우습게보면 삶도 우스워진다는 것이다.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면 삶도 경박하고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죽음을 우리의 전 존재로서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삶을 통전적으로 온전히 살아내지 못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죽음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② 한국인의 죽음의식

전통적인 우리의 죽음의 관념 가운데서도 끈질기게 남아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은 공포(恐怖)와 부정(不淨)이다. 우리 조상은 죽음을 크게 양대분하여 생각하는데 하나는 갈 길을 간 죽음이고 다른 하나는 갈 길을 못간 죽음이다. 전자는 호상(好喪)의 죽음이고 후자는 악상(惡喪)의 죽음이다. 호상은 매우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만 하는데 ①수를 누릴 만큼 누릴 것 ②그러면서도 부귀와 영화를 누릴 것 ③거기다 더해서 자식 복에 후손 복도 누릴 것 ④독한 병을 앓지 않고 편히 잠드는 듯이 임종할 것 ⑤임종은 제 집에서 하되 자식들이 남김없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할 것 ⑥여한이 없을 것 등 이처럼 많은 충분하고도 필요한 조건을 갖추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러한 호상의 죽음이 아니라 악상의 죽음이 우리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주고 이러한 죽음에 부정을 타면 위험천만한 삶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일찍이 죽음을 저편으로 내모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바로 이러한 정화되지 못한 개념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죽음에 대한 무관심 억압 그리고 침묵 혹은 타부시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상 죽음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우리 모두가 가야할 길인데도 이 죽음을 다시 한번 죽여버리고 삶의 저편으로 내모는 그런 의식과 관습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죽음이 인간에게서 멀어짐에 따라 ‘나’는 ‘나’에게서 멀어지고 인간의 본래적 의미는 흐려지는 것임을 우리는 잘 알아야 한다. 죽음에 관한 그 의미가 희미해질수록 죽음 뿐 아니라 태어남과 삶의 본질적 의미도 모호해지고 우리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의미에서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사람들은 죽음을 외면하고 죽음을 죽여버렸다가 결국 끝내 나를 덮치고 마는 엄습하는 노상강도 같은 꼴의 죽음을 나의 죽음으로 맞이하고 있다. 이런 죽음은 그야말로 의미없는 죽음이며 죽음의 품위를 상실한 죽음(death without dignity)이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러한 죽음이 온 세상에 널려 있다. 품위있는 죽음(death with dignity)이 없으면 품위있는 삶도 있을 수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죽음을 죽임으로 우리는 삶에서의 진지성이나 성실성 애절함이나 절박함도 다 상실해 버렸다. 이것은 죽음을 죽임으로 삶도 죽이고 있다는 말이다. 죽음으로 인하여 삶은 오직 일회성으로 제한되고 말지만 그런데 이 죽음으로 한계 지워지는 삶의 일회성이야말로 우리의 생의 진지함이나 의미나 혹은 열정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2. 죽음의 정의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1993)은 죽음을 “모든 생물이 겪는 생명 과정의 완전 정지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H. C. Black의 법률 사전(1968)에서는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죽음은 생명의 정지 즉 혈액 순환의 전면적 정지 호흡 및 맥박과 같은 동물적인 생존 기능의 정지 등으로 의사에 의하여 선언되는 생존의 종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의학자들에 의해 열거되는 죽음의 징후는 “호흡과 심장박동의 정지 동공(눈)의 변화 전기의 자극에 대한 무반응 사체 경직 창백하게 됨 혈액 침강 괄약근의 이완” 등이 있다.

이러한 일반적인 죽음의 정의 외에 죽음에 대한 생물학적 의학적 이해를 알아두는 것이 중요한데 다음의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① 심폐기능설(cardiopulmonary theory)

심폐기능설은 비교적 아주 간단한 것으로서 심장의 기능이 멈추고 그리고 또 한가지 호흡이 정지되면 이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사망하였다고 정의하는 기준이다. 다시 말하면 숨을 쉬지 않는 폐 기능의 정지 그리고 심장기능의 정지를 말하는 것인데 조금 더 상세히 설명하면 심장박동과 혈액순환의 전면적 정지 호흡운동 및 인체의 반사기능의 영구적인 정지를 가리켜서 죽음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② 뇌사설(brain death theory)

뇌의 모든 기능이 상실되고 또 그 상태가 어떤 치료 노력을 다하여도 회복되지 않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되었을 때를 가리켜 뇌사(腦死)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뇌사란 전 뇌의 모든 기능이 불가역적(不可逆的)으로 상실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뇌사설은 현실적 필요에 의해서 주창된 이론으로서 심폐기능은 뇌 기능이 정지된 이후에도 어느 정도 지속되기 때문에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여 장기이식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뇌사설은 이렇게 장기 이식과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품위있는 죽음(death with dignity)의 문제와도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3. 퀴블러 로스의 죽음의 단계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 Ross)는 죽음에 대하여 학문적인 논의를 불붙였고 방대한 연구를 시작한 정신분석학자이다. 그녀는 192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고 나중에 미국 시카고 대학병원의 정신과 의사로 근무하였는데 1965년 가을부터 시카고 신학대학생 4명과 함께 약 200여명의 임종환자를 면접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 결과 퀴블러 로스(Kübler Ross)는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반응에 다섯 가지의 단계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① 부정(denial)과 고립(isolation)의 단계

일단 회복 불가능한 불치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으면 환자는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치병에 걸린 것을 알게될 때 그들의 첫 반응은 “뭐라구요? 난 아니에요. 뭐가 잘못되었을 거예요.” 혹은 “아니 내가 그럴 리 없어”라는 등의 강한 부정을 한다는 것이다. 어떤 환자는 불치의 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자신의 죽음에 대한 부정을 확인 받기 위하여 다른 의사를 찾아가서 재검사를 요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죽음과 불치병에 대한 부정은 사실상 갑작스런 충격에 대하여 하나의 완충작용을 하며 환자로 하여금 자신을 가다듬게 만들고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덜 강경한 방어 수단으로 대체하는 여유를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환자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적 쿠션(cushion)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② 분노(anger)의 단계

자신의 병 증세가 점점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이를 조금씩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될 때 환자들은 부정 대신 분노와 시샘과 원망의 감정을 드러내게 된다. 자신은 불가피하게 죽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아남는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왜 하필 내가”(Why me)?의 원망과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는데” 또는 “나 같이 할 일이 많은 사람이 죽어야 하다니” “나를 의지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등의 분노가 함께 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원망과 분노는 불가피한 죽음에 대한 분노이기는 하지만 환자 자신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증명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③ 타협(bargaining)의 단계

죽음에 대한 부정과 분노의 시기를 거치면서 환자는 자신에게 아무런 소득이 없으며 죽음을 모면할 길이 없다는 것을 점차 인식하게 된다. 그러면 환자는 자기에게 아직 처리해야 할 과업이 남아 있으므로 그러한 일이 끝날 때까지만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타협을 하게 된다. 이 단계는 “어쩔 수 없지. 하지만...”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죽을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어린아이처럼 요구하고 애걸하고 타협을 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환자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연명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타협을 하게 되는데 하나는 생명연장에 대한 소망이고 다른 하나는 임종의 과정 중에 겪게 되는 육체적 고통과 불편함이 없기를 바라는 소망이다. 이때 타협의 대상은 주로 하나님이 되는데 비록 이전에 신앙을 갖지 못한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타협을 한다. 심리학적으로 타협은 일종의 죄책감과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④ 우울(depression)의 단계

죽어가는 과정의 네 번째 단계는 환자 자신이 모든 것을 상실하게 됨에 따라 생기는 우울의 단계이다. 이때 환자는 장차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결과에 대해서 깨닫기 시작한다. 더 이상 자신의 죽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면 환자는 “어쩔 수 없지” 하는 체념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이때 환자의 초연했던 자세와 무감동 그리고 분노와 걱정은 극도의 우울감으로 바뀐다. 그리고 과거의 상실과 이루지 못한 일 지금까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슬퍼하게 된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준비로서의 우울증 경향은 사실상 주위의 여러 가족들과 친지 그리고 기타 일생동안 관련되어 왔던 여러 사물들과 결별하는 데 필요한 하나의 점진적이고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환자는 거의 말수가 줄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지 아니하려 하는데 이것은 다른 사람과의 일을 모두 끝냈다는 신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히려 하나의 은총이라 할 수 있다.

⑤ 수용(acceptance)의 단계

환자는 이 단계에 이르게 되면 자신의 운명에 대한 분노나 침울은 사라지고 죽음을 차분히 맞이하는 상태가 된다. 또한 관심의 범위가 좁아지고 외부 문제로 인하여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대부분 혼자 있고 싶어하고 때로는 문병객을 달가워하지 않으며 이야기를 나눌 기분이 아닐 때가 많다. 그러나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은 죽음을 수용하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나 패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 나는 만족스럽다.” “이제 모든 것을 다 끝내고 할 말도 다했다.” “나는 이제 죽을 준비가 다 되었다.”라는 기분을 갖게 되는데 이와 같은 상태가 바로 수용의 단계이다. 실로 환자가 공포와 절망을 초극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 순간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성숙한 면모를 나타내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품위있는 죽음(death with diginity)의 모습이다.

※희망(hope)의 단계

퀴블러 로스(Kübler Ross)의 연구는 삶의 문제만 붙들고 투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과 깨달음을 주었다. 삶은 죽음을 전제로 할 때 더욱 더 숭고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한 것이다. 삶의 영역에서 죽음을 제외시켜 버렸던 사람들은 퀴블러 로스의 연구를 통하여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의 문제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구체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퀴블러 로스의 공헌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퀴블러 로스(Kübler Ross)가 주장하는 대로 죽음에 이르는 환자가 경험하는 심리 변화의 이론은 죽음에 대해서 지나치게 일반화시키는 경향이 있고 이 다섯 단계를 그대로 거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알아두어야 한다.

그런데 퀴블러 로스(Kübler Ross)는 나중에 그녀는 자신이 여러 곳에서 강연한 것을 모아 『On Life After Death』(1991)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이 우리나라 말로는 “사후생”(死後生)이라는 말로 번역이 되어 있다. 그는 초기에는 과학자로써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너무나 많은 임종 환자들을 겪는 가운데 소위 죽었다 살아난 이른 바 임사(臨死) 체험을 한 사람들을 자주 만나면서 죽음 뒤의 세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에 박차를 가한 것은 퀴블러 로스 자신이 소위 유체(幽體) 이탈 체험(OBE out of body experience)을 하게 되면서 더욱 더 깊은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그 결과 기록한 책이 바로 『On Life After Death』이며 이 책에서 그는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서 그동안 사람들이 ‘믿음의 문제’라고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앎의 문제’라고 역설하였다. 그러면서 인간의 죽음을 “고치를 깨고 나오는 나비와 같은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죽음 뒤의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많은 방증 자료를 통해 제시하였다. 죽음 뒤의 영역은 사실 과학적 학문의 영역은 아니다. 그러나 퀴블러 로스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수많은 강연을 통하여 책까지 펴내는 것을 보면 그것은 ‘①부정과 고립­②분노­③타협­④우울­⑤수용’의 도식을 뛰어넘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4. 죽음학(thanatology)과 죽음교육(death education)

퀴블러 로스가 죽음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후에 서구에서는 죽음학(thanatology)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다. 최근 30여 년간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죽음학에 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는데 이것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 의학 지식의 발달과 보급 의약 설비의 완비 경제 생활의 점진적 개선 생활의 질의 끊임없는 상승과 요구 대중매체의 보편화 오락산업의 발달 사회 고령화 현상 등으로 인한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학들은 ‘사망과 임종(death and dying)’이라는 과목을 개설하고 있으며 종교학과 철학과 심리학과 사회학과 교육학과 등의 많은 수강생들이 죽음학 및 죽음교육(death education)과 각 전공학과와의 관련성을 탐구하고 있다.

죽어가는 과정에서의 심리적 단계라는 개념을 소개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 Ross)의 저서 『On Death and Dying』(1969)은 죽음학 분야에 대한 관심을 자극한 역작이다. 퀴블러 로스의 연구가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의 관심을 끌었다는 것은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다. 그후 1977년에는 『Death Education』 1985년에 『Omega』라는 죽음 관련 잡지가 출간되어 죽음과 사별에 관한 연구물을 출간하고 있고 1978년에 워싱턴에서 ‘죽음 교육과 상담을 위한 포럼’(the Forum for Death Education and Counseling)이라는 회의를 시작으로 해마다 연차회의가 열리고 있다. 또한 죽음과 임종과 관련된 많은 연구와 교육훈련이 미네소타 대학에 있는 ‘죽음교육과 연구를 위한 센터’(the Center for Death Education and Research)와 같은 대학의 전문센터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죽음교육에 있어서도 미국은 1950년대부터 형식적 죽음교육 프로그램이 시작되었으며 1960년대와 70년대에 이르러서는 질적․양적인 면에서 성장을 거듭하여 대중화되기에 이르렀다. 미국 내에서 해마다 제공되고 있는 죽음교육 프로그램은 1 000여 개에 이르고 있고 적어도 938개의 대학에서 죽음교육코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공립 초등․중등학교의 약 11%가 죽음에 대한 강좌나 단원을 17%가 비탄 개입이나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25%가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형편에서는 이러한 연구의 주제가 아직도 생소한 학문 분야이며 이러한 분야에 있어 쌓여져 있는 학문적 결과물도 별로 찾아볼 수가 없고 죽음 교육(death education)도 굉장히 열악한 상태에 놓여져 있다. 무엇보다도 죽음을 삶의 언저리로 제외시켜 놓는 문화 때문에 우리는 죽음과 친숙하지 못하고 오히려 타부(taboo)시 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므로 교회와 신학교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고 죽음학과 죽음교육을 활성화시켜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의 종교적 사명과도 연관되어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5. 죽음과 더불어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는 두 가지의 종말을 앞에 두고 살아가고 있다. 한 가지는 개인의 종말인 죽음의 사건이요 다른 한 가지는 역사의 종말인 재림의 사건이다. 어느 종말이 먼저 다가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종말은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며 언젠가는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므로 종말을 받아들이며 종말을 준비하며 살다가 품위있는 종말(death with dignity)을 맞이하는 것은 엄숙한 우리의 마지막 사명이다.

우리의 생이 70년이면 25 550 일이고 80년이면 29 200 일에 불과하다. 이렇게 우리의 날 수를 계산해 보면(시90:12) 우리는 아찔함을 느낀다. 생각보다 우리의 날 수가 짧고 그리고 남은 날 수는 더더욱 짧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복음 9:4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그렇다. 우리는 지금 아직은 낮인 중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밤은 속히 올 것이다. 밤이 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아직도 낮일 동안에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사랑하고 충성하며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바울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참 아름다운 고백을 하였다. 디모데후서 4:6～8에는 바울의 마지막 고백이 기록되어 있다. “(6)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가? 우리도 죽음 앞에 겸허히 옷깃을 여미고 살다가 홀연히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 결코 후회스런 고백이 아니라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데 역사 속에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죽음은 바로 우리 예수님의 죽음이다. 그분은 마지막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한복음 19:30에서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짧고 짧은 33세의 생을 사셨지만 그분은 이 세상에 오신 모든 삶의 목적을 다 이루셨다. 그래서 그분의 마지막 말씀은 이렇게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이었다. 이 짧으면서도 장엄한 한마디는 십자가상에서의 예수님의 죽음이 인간 역사의 절정이요 인류의 모든 희망의 근거라는 사실을 온 세상에 천명하는 대선언이었다. 얼마나 멋있는가? 예수님의 사역을 이렇게 표현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간적으로 생각해도 정말 멋있는 삶이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예수님에게 있어서 그분의 죽음은 육신적 생명의 한 완성이었다. 죽음으로써 예수님은 삶을 완성하신 것이다. 이제 우리도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처럼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하나님의 목적을 다 이루어드렸다고 고백할 수 있는 바로 그런 삶을 살다가 아름다운 죽음 품위있는 죽음(death with dignity)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다. 죽음을 의식하며 살아가면 참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은 잘 살자는 것이다. 그래서 웰다잉(well-dying)이 곧 웰빙(well-being)이다.

<발제1>

그리스도인의 생명과 죽음 이해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1. 우리 사회를 뒤흔든 세 죽음

최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일들이 사회적으로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가 고(故)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몇 안 되는 존경받는 원로였던 김수환 추기경이 돌아가신 후 이 사회에서는 추모열기가 일어났다. 일찍이 돌아가실 일이 예고되어 있었기 때문에 천주교에서는 잘 준비된 모습으로 그분의 죽음을 사회적 사건으로 만들었고 여러 가지 감동어린 이야기들이 방송을 통하여 전하여졌다. 그가 돌아가신 후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천주교인이던 아니던 간에 성당을 찾아서 참배를 하였다. 그 참배대열에는 사회의 유명인사들도 참여되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사회의 원로이고 어른이셨던 분에 대한 존경이나 추념의 마음으로 참배한 것이다. 이 일을 통하여서 한국사회에 추모의 문화가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죽음의 관점에서 보면 고 김수환 추기경은 넓은 의미에서 존엄사를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죽음 앞에서 어떠한 인공적인 생명연장 수단을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고 그의 당부는 그대로 지켜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서 사회적 분위기는 그가 종교인으로서 죽음 앞에서 의연히 가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엄밀히 생각해 보면 그는 현대의학이 만들어 놓은 치료나 장치들을 거부함으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것을 존엄사라고 하고 정말 넓은 의미에서는 자살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그의 죽음 앞에서 그러한 불경한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고 신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그에게 죽음의 선택조차도 종교적 행위로 간주된 것이다. 그 거룩한 선택에 가족이나 의료진조차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그의 선택을 받아들인 것이다. 죽음 앞에서 그는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또 다른 죽음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다. 직전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사회는 정치적 타살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주기도 했고 그를 죽음으로 내몬 이유가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애써 그의 죽음을 자살로부터 분리하려는 적지 않는 시도들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가 죽은 이후에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대표하여 김인국 신부는 봉하마을에서 추모미사를 올리고 그의 죽음은 비록 자살로 계명을 어긴 것이지만 사회적 타살이기 때문에 구원의 여지가 열려있다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 아주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전국 모든 주요 사찰에서 추모의식을 거행하고 있고 특히 49재를 매주 올리고 있다. 불교에서도 자살한 사람들에 대해서 교리상 그렇게 너그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적극적으로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은 특이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개신교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서 다양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자살한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추모할 일이 없다는 입장에서부터 그의 죽음에서 예수를 보고자 하는 사람까지 아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할 점은 자살을 통한 그의 죽음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의 죽음을 보는 종교계에서도 종교적 가르침이나 신념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정치적 해석에 신학화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죽음은 이렇게 자살에서 추모되어져야할 거룩한 정치적 행위로 승화된 것이다.

좀 다른 측면이기는 하지만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에 있는 김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김할머니의 가족들은 그의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 법정투쟁을 벌였다. 비록 죽음 앞에 있지만 산소마스크를 뗄 수 없다는 병원 측을 상대로 가족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가족들의 의견에 손을 들어 주었다. 결국 6월 23일 병원은 할머니의 인공호흡기를 떼었고 가족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기다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할머니는 산소호흡기가 없이도 자가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산소호흡기를 떼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서 할머니는 오히려 안정된 호흡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건을 통해서 사람이 그 죽음을 진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게 된다. 가족조차도 포기했던 그 삶이 예상을 뒤엎고 아직 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 죽음을 통해서 이 사회는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평등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일부에서는 그 죽음이 선택되고 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신의 영역이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인위적인 죽음에 대해서 대부분의 종교는 그것을 불경한 것으로 여겼지만 최근에 이루어진 유명인사의 죽음에서 이 사회와 종교는 그 일이 특별한 것이라고 여기며 종교적 정당성을 부여해 준 것이다. 그것이 소극적인 의미의 존엄사였던 적극적 의미의 자살이었던 간에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쉽게 허락되어지지 않는 것이고 - 존엄사를 위해서 법정투쟁까지 벌여야했던 김할머니의 가족을 생각해 보면 - 일반적인 사람이었다면 부정적 취급을 받았을 일인데 특별한 사람들의 죽음이었고 특별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때론 아름답게 또 때로는 의로운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정당성을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경계해야할 일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식이 이 사회에 만연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존엄사이던 자살이던 간에 신의 권한이 아닌 인간의 선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자리에서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 이해와 의미에 대해 깊이 있게 성찰해 보고자 한다.

2. 한국인의 죽음 이해

죽음은 인간에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언젠가 우리가 죽어야한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유쾌한 일은 아니기에 우리는 애써 그것을 외면하려고 한다. 이것을 김열규는 ‘죽음에 대한 백치’라고 명하고 있다. (김열규: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47) 죽음이 두렵기에 죽음에 대해서 바보인척 모른 척 하는 것이다. 그 위장된 백치를 통해서 사람들은 죽음을 맞닥트리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이것이 사람들이 죽음을 대하는 가장 흔한 방법이라고 한다. 이렇듯 죽음은 우리에게 두려운 그 무엇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그 죽음에 이르는 고통보다도 그 죽음 이후에 무엇이 준비되어 있을지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해 보고자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 죽음의 초월을 시도해 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종교이다. 종교는 우리에게 이 궁극적 두려움을 구원으로 극복하도록 하기도 하고 자신을 넘어선 그 무엇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바로 인간은 이러한 다양한 방법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해 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극복의 방법론은 단지 종교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전통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나 사회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있다. 바로 우리 민족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인들은 죽음을 멀리 두지 않으면서 그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 즉 죽음을 어느 날 다가올 두려운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일상 가운데 깊숙이 들어와서 매일 만나는 것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인들이 자신의 묘자리를 마련해 두고 곽(槨)을 미리 파두는 경우이다. 그리고 스스로 수의를 마련하여 두고 장수를 꿈꾸기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죽음을 스스로 예비하는 관례가 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미리 자신의 죽음에 스스로를 길들이려고 하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서 생과 사의 화해를 시도한다. 이러한 화해를 통하여 자신의 죽음을 낯설지 않게 하고 그 죽음에 길들게 되는 것이다. (김열규:66)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한국인은 죽음을 삶 가운데서 경험하며 그 죽음을 삶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를 김열규는 삶의 끝에 죽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보이지 않게 간직되어 있던 죽음이 어느 날 문득 다 갖추어진 모습으로 삶 전체를 뒤집어 보는 것뿐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한국인의 죽음에서 또 특이한 사실은 죽은 이들이 산 자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의 구성원으로 집안의 울타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조선조 말기를 거쳐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죽은 이들도 확연하게 가족구성원 속에 편입되어 있다. 죽은 이는 이런 의미에서 떠나버린 가족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가족으로서 한 집안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눈에 보이는 산 사람 사이에서의 교통보다도 더 긴밀하게 산 자와 죽은 자가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 대표적인 예가 집안에 있었던 사당에서 드리는 평소의 제례(祭禮)를 볼 수 있다. 조상을 모셔둔 사당에 사람들은 매일 새벽 향을 올리고 두 번 절을한다. 집을 나가고 들어올 때도 절을 할 것이고 나가서 자고 올 때면 향을 피우고 두 번 절을한다. 또 열흘이나 걸릴 만큼 멀리 외출하게 될 때는 두 번 절을하고 향을 피운 후 무릎을 꿇고 앉아 고사를 읽고 또 두 번 절을하고 간다. 역시 돌아와서도 이와 같이 행해야 한다. (이민수편역:관혼상제: 140-141) 이와 같이 밖을 출입할 때 우리 조상들은 사당에 그 예를 극진히 드렸음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설과 동지 그리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정해 놓고 사당에 참배한 일과 명절에 시식을 올렸던 일 또 무슨 각별한 일이 있으면 나아가 아뢰던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을 보면 죽은 이들에 대해서 우리 조상들은 안방을 지키고 있는 부모에게 하듯이 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비록 돌아가신 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한 가족으로서 집안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김열규:18)

필자의 경험에서도 특별했던 것은 한국인들은 죽은 이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그 자녀들이나 남은 배우자들이 영정을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영혼과의 대화가 아니라 그냥 죽은 이를 산 자처럼 여기며 나누는 대화이다. 어떤 자리를 보면 유족들이 문상하러 온 사람들을 하나씩 죽은 이에게 소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대화를 보면 마치 그 대상자가 죽은 것이 아니라 바로 옆에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오랜 외국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이러한 일은 외국에서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아마 외국의 경우는 죽은 이들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이생에 없는 어떤 장소로 떠나간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외국의 영화를 보더라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장례식이란 환송의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에게는 제례를 통해서 계속 죽은 이들과의 관계와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일 년에도 몇 번 씩 치러지는 제사나 차례를 보면 한국인들은 조상과 함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인들의 조상제례가 특별한 것은 그 조상이 신(神)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죽어서도 가족들 가운데 존재하며 그들을 지켜주는 존재라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그 죽은 자들이 신사(神社)에 모셔지며 인간이 아니라 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죽은 이들은 그 후손들의 인사를 받고 음식을 함께 나누는 친밀한 존재이다. 죽음으로 인해서 떠난 이들이 아니라 산 자들과 함께 삶을 나누는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한국인의 죽음관은 유교의 죽음을 이해하는 방식에 기인한다. ‘유교와 기독교에서의 죽음 이해와 정치 경제적 효과’라는 논문에서 최우영은 유교의 죽음이해는 기독교의 죽음 이해와 대립되게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기독교에서 죽음이 구원과 천년왕국에 의해 보상되고 또 신의 의지에 의해 그것이 담보된다면 유교에서 죽음은 (역사적) 기억과 재현을 통해 보상되고 후대(자손)의 실천에 의해 그것이 담보된다.’ 그의 이야기는 기독교는 절대적 존재에 의해서 죽음이라는 인간의 한계를 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신의 전지전능성과 실패할 수 없는 그의 ‘의지’에 의해서 인간은 구원을 받게 되고 천국으로 인도된다는 것이다. 즉 철저히 인간을 뛰어 넘는 신의 의지에 근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교의 경우는 그러한 절대자가 없다. 단지 인격성이 배제된 원리이자 만물의 주재자로서 이(理)가 존재한다. 인간은 바로 이러한 이(理)에 부합하는 합리(合理)에 따르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 합리를 행하는 것이 법이 바로 오륜(五倫)이라고 하고 그 중에 제일 중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효(孝)라고 한다. 그러나 이 효는 단순히 살아생전의 부모에게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후까지도 아우르는 것이다. 특히 사후에 이루어지는 효가 가장 으뜸가는 합리적 실천이라고 여겨졌다.

유교에 있어서 이 효는 단순한 세속 규범이 아니라 엄숙한 종교적 명령이라고 최우영은 말하고 있다. 사후의 효의 본질은 부모를 포함한 선대를 ‘기억(remember)’하고 일정한 형식을 통해 그를 ‘재현(represent)’하는데 있다. 유교 특유의 조상숭배(ancestor worship)와 관련 의식(ritual)을 통해서 후손들은 조상들을 기억하고 재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과 재현을 통해서 조상들은 존재의 영원성을 얻게 된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후손들의 이러한 기억을 통해서 그 가족 가운데 영원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神)이 없는 유교의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이며 죽음을 대하는 방법인 것이다.

바로 이 기억과 재현 때문에 유교적 인간은 삶을 진지하게 대하게 된다. 자신의 삶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 의해서 대대손손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유교에서 자살이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기억될 마지막 모습을 그렇게 죄스러운 모습으로 남긴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그 죄스러운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영원토록 산다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다.

또 한국인의 죽음에 특별한 점은 죽음의 압력을 지니고 산다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죽음에 대해서 죄업을 지니고 산다. 이것이 바로 3년 상을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학을 하며 부모의 죽음에 대해서 죄의식을 가지고 그 죄업을 씻기 위해 사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자식들에게는 인륜으로 비쳐졌고 정으로 비쳐진 것이다. 이러한 것으로 인해 한국인들은 강박관념화한 죄업의식을 지고 사는 것이다. 죽음은 이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사람에게 태산 같은 압력으로 다가오게 되며 그 죽음에 눌려서 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이러한 죄의식을 우리도 최근에 경험했다.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이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한 장면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대통령과는 별 연고도 없으면서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의식에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바로 이러한 죽음에 대해서 죄업의식이 강박관념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결론적으로 한국인의 죽음관은 죽음과 멀지 않은 곳에 머무르며 죽음을 피하지 않고 화해하려는 시도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더 나아가서는 죽은 이들이 현재의 가족들을 떠나지 않으며 자손들의 기억과 제례 가운데 함께 하고 그 집안에서 보이지 않는 가족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 자녀들은 그 부모의 죽음에 대해서 죄업의식을 지고 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3. 기독교가 이해하는 죽음

1) 한국교회가 죽음과 자살 그리고 구원에 대해서 논해야하는 이유

기독교인들에게 죽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아주 명쾌한 것 같다. 예수 믿고 천국 가는 것이 중요한 중심 주제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검투사의 칼에도 사자의 입속에서도 예수의 이름을 찬양할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믿음이나 믿음의 지식이 없어진 것 같다.

얼마 전 필자는 자살에 관한 책(조성돈 정재영:그들의 자살 그리고 우리)을 출간했었다. 당시 언론에서 취재가 이루어졌는데 그 여파가 엉뚱하게 ‘자살한 사람은 지옥 간다’의 명제가 옳은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크게 벌어졌다. 필자의 주장은 자살한 사람은 지옥간다는 것은 우리 인간의 판단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살한 사람이 천국 가는가’ 그것 역시 인간의 판단 영역을 넘는다는 것이다. 즉 자살이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큰 범죄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그 죄로 인해서 그 사람이 무조건 지옥 가야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용서를 받았을 수도 있는 것이고 그가 회개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렇게 쉽게 단정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인간이 침범하는 것이라고 본다.

종교개혁가들이나 개혁주의 전통에 있는 신학자 윤리학자들은 자살한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견해에 대해서 비성경적인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대 한국교회 성도들의 대부분은 자살한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고 그들은 지옥에 간다고 대답을 한다. 이러한 통속적인 속설에 대해서 성도들은 그것이 개신교회가 가르치는 정해진 교리인 줄 아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것이 성경에 나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적지 않은 성도들이 인터넷에서 보인 반응은 필자의 믿음을 의심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면서 한 인터넷 매체의 기사에서는 수 없는 댓글이 붙으면서 자살에 대한 논쟁에서 구원의 문제로 이어졌다. 그런데 그 논쟁을 보면 성서적이거나 신학적인 면 보다는 그냥 교회나 주변에서 들어왔던 이야기들이 싸움의 형태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즉 정확한 사실이나 진리의 문제 보다는 섣불리 감정적인 판단을 내리고 들어온 상식에 기댄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논의를 보면서 필자는 한국교회가 죽음이나 자살 그리고 구원의 문제에 대해서 너무 등한시 해 왔다는 것을 느꼈다. 정말 우리가 이야기하는 구원이 무엇이고 그 죽음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해서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때라고 본다.

또 이러한 논쟁이 최근에도 불거졌다. 바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였다. 자살로 죽은 그 분이 구원을 받았을까에 대해서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미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한 신부는 그의 죽음을 정치적 타살로 보고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로인한 영향인지 개신교에서도 그가 구원을 받았을 것인가에 대해서 논쟁을 벌였다. 그 이유로 그가 어렸을 때에는 교회를 다녔고 중학교까지 목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측도 있었고 그를 만났던 목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하여 그가 믿음이 있었다고 하는 측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자살한 사람을 추모하는 것조차 우리가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측도 있었고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오히려 그에게서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고자하는 신학적 노력을 하는 측도 있었다. 교계는 정말 다양하게 그의 죽음을 이해하려 했고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히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할 것은 개신교에서 한 인간의 구원에 대한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섣불리 인간이 그 기준을 가지고 죽은 이의 구원을 논한다는 것은 그 주제를 넘는 일이며 하나님의 영역을 넘어서는 일임을 알아야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단순히 신앙이나 신학에 기댄 판단보다는 이념이나 사회적 환경에 기댄 판단을 하고 그것을 신학화하려 했다. 이것이 바로 죽음과 구원에 대한 우리 생각의 미천함을 드러낸 일이었다고 본다.

2) 성경이 말하는 죽음

성경은 죽음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죽은 시체에 대해서 보이는 부정적인 태도는 죽음을 흉한 것으로 보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죽음은 곧 죄의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또 죽은 자들의 특징은 하나님 찬양에서 제외된 자로 살아 있는 자들과 대조하고 있다.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 오직 산 자 곧 산 자는 오늘 내가 하는 것과 같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신실을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알게 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니 우리가 종신토록 여호와의 전에서 수금으로 나의 노래를 노래하리로다” (사 38:18-20) 즉 죽은 자들의 세계인 스올에서는 감사하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없는 곳이다. 그곳은 산 자들의 세계와 그렇게 구별되고 있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은 그와 반대로 여호와의 일과 말씀을 찬양할 수 있는 자다. 생명이란 구약성서에서 바로 ‘관계를 맺다’ 특히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이란 바로 이러한 관계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한스발터볼프:구약성서의 인간학:191)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약은 죽음에 대해서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다. 스올이라는 죽은 자들의 세계조차도 창조주가 되시는 하나님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시 139:8) 그러므로 스올이 하나님과의 교류가 잠정적으로 끊어진 영역이라고 하는 것은 종국이 아니라 영원에 이르는 한 과정이라고 하는 것이다.(김이곤:삶 죽음그리고죽음이후:28) 그래서 욥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한다. “주는 나를 스올에 감추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키실 때까지 나를 숨기시고 나를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나를 기억하옵소서” (욥 14:13) 즉 죽음의 세계인 스올 조차도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있으며 그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래서 욥은 자신을 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그곳에 감추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 주님의 진노가 비켜가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그 죽음의 장소가 이제 긍휼의 하나님 앞에서 피난처가 되는 것이다.

구약에서 보여지는 또 다른 죽음에 대한 의미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창조주 되신 하나님이 주신 생기를 가지고 사람이 흙에서 나와서 일정 기간을 생명으로 살다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죽음임을 보여주고 있다. 구약에서 죽음은 즉 구속사를 이루어 가시는 긍휼하신 하나님의 품 안에서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말하고 있다. (김이곤:35)

민영진은 ‘삶과 죽음과 생명’이라는 한국기독교윤리학회에서 행한 강연록에서 신약성경을 통해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는 바를 놀라운 통찰력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제시한 본문은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골로새서의 말씀이다.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골 3:3-4) 여기서 바울은 우리가 죽음과 함께 살고 있음을 부여주고 있다. 우리가 살아 있지만 이미 죽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앞에 감추어졌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죽었을 때 우리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사후의 삶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생명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또 다른 본문은 누가복음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서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그들은 아무 것도 감히 더 물을 수 없음이더라” (눅 20:34-40)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바로 부활한 자는 다시 죽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즉 영원한 생명에 관한 말씀이다. 더 중요하게 보이는 것은 그리고 민영진의 탁월한 통찰력이 보이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하면서 하나님에게는 산 자도 심지어 죽은 자도 살아있는 자라는 것이다. 본문에서 보는 믿음의 조상들 즉 아브라함 이삭 야곱조차도 하나님께는 살아있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적인 관점에서 죽음은 우리에게 생의 끝이지만 하나님께는 그 죽음조차도 하나의 구분일 뿐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생명을 가지고 있음이 살아있는 자인 것과 같이 죽었을 지라도 그것은 긍휼의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죽음조차도 우리의 구분일 뿐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죽을 수 없는 그 부활의 영광을 덧입기까지 우리 믿음의 순례는 계속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죽음조차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선하심 안에서 이루어져야하는 믿음의 행위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죽음이 생과 사를 선함과 악함을 구원과 패망을 가르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안에서 하나 되어 그분 안에서 다시 죽을 수 없는 존재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가 죽어도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는 자가 되어 살아가게 될 때에 우리가 그 죽음을 우리의 임의로 처리하고 죄된 모습으로 그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4. 나아가며

요즘 사회에서 죽음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고 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그 죽음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즉 죽음 자체가 신의 영역에서 떠밀려 인간의 선택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결정하려 든다. 그래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기도 하고 존엄사나 안락사를 통해서 자신이 죽어야할 때를 또는 부모가 죽어야할 때를 결정한다. 이전에는 죽음이라는 것이 결정사항은 아니었다. 그것은 맞이하는 것이지 인간이 붙잡고 좌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의 경향은 그러한 자연스러운 죽음 외에도 스스로가 선택하는 죽음도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이미 들어오는 말에서 미리 보여준 바와 같이 사회지도층에 의해서도 나타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현상이 이제 아주 보편적으로 되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제적으로 우리나라는 OECD 국가중 자살율이 최고이다. 2007년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자살은 사망원인 4위이다. 암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후에 당뇨병 운수사고 고협압 폐렴 등이 나타나고 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또 최근에는 세브란스의 김할머니 사건처럼 가족이나 본인이 존엄한 죽음이라는 미명 아래 죽음을 때를 정하고 있다. 때로는 적극적으로 의사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소극적으로 의료기기를 거부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죽음을 선택한다는 의미에서 존엄사는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존엄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 의학이 너무 발달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신의 생명이 신의 부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는 명제가 거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즉 자연의 순리에서 볼 때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것이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가는 부분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무엇보다도 의학의 발달로 인해서 생명이 연장되듯 생명을 멈추게 하는 것도 결국 의학의 책임이 됐다는 것이다. 즉 환자나 그 가족의 선택에 대해서 의사들이 동의해야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판단해야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죽음이 선택된 상황에서 기독교는 죽음과 생명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르쳐야할 필요가 생긴 것이다. 생의 가치와 더불어 죽음에 대한 가치도 만들어 나누어야할 때이다. 김열규는 이 시대를 가르켜서 삶이 위협받듯이 죽음이 위협받고 있다고 경고했다. 인간 제도와 사회 관습이 죽음의 값을 막무가내로 평가절하하고 갖가지 반인간적인 인간행위가 죽음의 의미를 빼앗아가고 있다고 한다. (김열규:68) 이러한 시대에 한국교회는 바른 구원관과 죽음에 대한 관점을 제시하고 그 뜻을 만들어 가야하겠다. 그것이 바로 생명에 대한 바른 가치를 제시하는 길이라고 본다.

자살에 대한 사회학적 이해와 그 현실

자살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건일 수 있다. 죽임에 직면하게 되고 결심하게 되는 것이 모두 개인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몇몇 사람들의 일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 된다면 거기에 대한 원인과 대책을 생각을 해 보아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살의 현상에 대해서 과학적인 분석과 해석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본고에서는 먼저 한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살의 경향을 통계를 가지고 분석해 보고 그 원인을 나름대로 설명해 보았다. 그리고 그러한 사회적 경향이 과연 개인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그리고 주체적인 상황에서 신앙인은 자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살의 상황에서 어떻게 극복해 냈는지를 살펴보았다.

1. 한국사회의 자살 경향

자살에 관한 사회학적 고전인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에 의하면 모든 사회적 집단에는 유기적 및 심리적인 개인의 체질이나 물질적인 환경으로서 설명할 수 없는 특이한 자살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각 개인으로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사회적으로 종합하여 볼 때에 어떤 경향성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각 개인으로 볼 때 그들의 자살은 그 개인의 특별한 사정과 여건으로 설명되어질 수 있지만 그것을 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는 특정한 경향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뒤르켐은 19세기 말 유럽에서 일어난 2만6000건의 자살기록을 분석하여 자살의 경향을 분석해 내었다. 그러면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그와 같은 자살의 경향을 말할 수 있을까.

1.1 통계청 자료를 통해 본 한국사회 자살

한국사회 자살의 경향을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료는 통계청에서 매 해 사망신고서 내용 중 사망원인항목을 집계한 ‘사망원인통계결과’이다. 이 자료에 보면 지난 한 해 동안 사망에 이른 사람들의 원인을 다각도로 분석해 놓아서 자살이라는 항목으로 살펴보면 한국사회에서 자살이 어떠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통계청이 2006년 9월에 내어놓은 “2005년 사망원인통계결과”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동안 사망한 사람들 중 자살에 의해 죽음에 이른 사람이 1만2000명에 달한다. 이는 하루 평균 33명이 자살한 것을 의미하고 인구 10만명당 26.1명이라는 경이적인 자살률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살률로 볼 때 30개의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로 2위 헝가리가 2002년에 보여준 23.2명보다도 훨씬 높은 것이다. 헝가리의 이러한 수치도 자살률 18.8명으로 3위에 이른 핀란드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것인데 우리나라의 26.1명이라는 수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통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살에 대한 심각성이 나타나게 된다. 사망원인 별로 나누어 보면 2005년 한국 사람들은 암으로 인해서 가장 많이 사망하였고 그 다음이 뇌혈관 질환 그리고 심장질환으로 나타나며 전체적으로 사망원인 4위는 자살이다. 이것은 성인병 질환으로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당뇨병 보다도 높은 수치이고 간질환이나 운수사고 고혈압이나 폐렴보다도 높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살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질병보다도 심각하게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사회적 질병으로 보아야한다.

(단위:천명 10만명당 % 명)

이것을 연령대 별로 나누어 보면 더한 심각성에 직면하게 된다. 자살은 이제 20대와 30대에서 사망원인 1위이다. 20대에서 2위는 운수사고이고 30대에서 2위는 암이다. 이 연령대에서는 자살이 교통사고보다 암보다도 더 심각하게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10대와 40대에서는 2위로 나타나고 있다. 40대부터는 암이 가장 심각한 사망원인으로 나타나는데 이 후에 자살이 중요한 사망원인으로 나타나고 10대는 질병보다는 외부적 요인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경우들이 많은데 1위가 운수사고이고 2위가 자살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50대와 60대에서도 자살이 사망원인 5위로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통계를 볼 때에 자살은 어느 한 연령층에 집중되어 있다기 보다는 전 연령층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사망요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또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자살한 사람들의 연령별 비율이다. 전체 자살사망자를 100으로 놓고 연령대 별로 그 비율을 살펴보면 2004년 기준 40대가 자살자중 가장 많은 수치를 차지하여 21%에 이르고 다음이 60대로 16.3% 30대 15.8% 70대가 13.8% 20대가 9.4% 10대가 2.1%로 나타난다.

표 1 연령별 자살구성

1.2 자살의 경향: 장년층의 자살

위와 같은 통계를 가지고 생각해 보면 몇 가지 대한민국 자살의 경향을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장년층의 자살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자살은 젊은 사람들이나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많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보통 우리도 자살의 원인이라면 성적비관이나 실연 등이 많이 떠오르게 된다. 최근에 이르러서는 우울증이라는 원인으로 젊은 여성들의 자살이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된 데는 아마 언론의 보도가 일반적인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사건들을 보도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20대 여성 연예인들의 자살로 인해서 사람들이 자살은 젊은이들이나 우울증의 빈도가 높은 여성들에게서나 나타난다는 오해를 하기 쉽다. 특히 언론에서 그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그 이후에 이어지는 모방자살 즉 베르테르 효과에 까지 관심을 가지면서 사회는 자살에 대한 경각심을 다른 방향으로 몰고 가고 있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위의 통계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10대와 20대의 자살은 그렇게 주목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30대 이상에서 자살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전에는 우리가 ‘늙으면 죽어야지’하는 노인들의 한탄을 3대 거짓말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 통계를 볼 것 같으면 노인들의 이러한 말이 이제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나타나는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여기서 더 주목해야할 것은 이러한 노인자살률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살자 중 60대 이상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2004년 40.5%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2002년 31.3% 2003년 33%에 비하여 아주 급격하게 늘고 있는 추세인데 우리는 여기에 주목해 보아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이러한 비율로서가 아니라 조사망률(인구 10만명당 사망자수)로 보게 되면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심각해지는데 60대는 54.6명 70대가 80.2명 80세 이상이 127명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평균 자살률 26.1명에 비한다면 아주 놀라운 숫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게 되는 이유로서는 무엇보다 가족의 해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시스템에 의존하기 보다는 노인문제는 가족에 일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가족이 해체되어짐으로 말미암아 노인들의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더군다나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있는데 경제문제는 해결이 안 되어 있고 핵가족을 넘어 깨어진 가족이 된 자녀들에게 기대할 것도 없는 상황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해체가 가져오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또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할 부분은 이 사회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30대와 40대의 자살이다. 이 연령대가 자살한 사람들 중에 차지하는 비중은 36.9%이다. 여기에 50대의 연령층을 합하면 50%를 훌쩍 넘어가는 수치가 나오게 된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황금기이고 동시에 이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이 연령층에서 이러한 높은 자살률이 나온다는 것은 현재 이 사회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본다. 특히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40대는 정말 가장 열심히 일을 하여야할 때이고 가정적으로도 한참 사춘기의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을 때인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사회의 건전성을 답보한다는 차원에서도 이 연령층의 자살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려해 보아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1.3 자살의 경향: 남자들의 높은 자살률

두 번째 경향은 남자의 자살률이 여자보다 훨씬 높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평균으로 보았을 때 자살한 사람들 중 2004년 기준 남자는 여자보다 2.2배 정도 더 많다. 조사망율로 보면 남자는 34.5명이 자살로 사망에 이르렀고 여자는 15.8명이다. 특히 이러한 추세는 가장 많은 자살자 수를 낸 40대에 이르면 더 심각해지는데 이 연령대에서는 남자가 43.3명으로 여자 17.4명에 비해 약 2.5배가량 높게 나타나고 있다. 50대는 그 격차가 더 벌어져서 남자가 53.6명이고 여자가 15.7명으로 약 3.4배가량이나 그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남녀 간의 차이는 일부에서 ‘자살성공률’의 차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므로 자살을 시도하더라도 죽음에 이르는 것은 30~50건 가운데 하나라고 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남자들이 아무래도 그 방법이 과격하기 때문에 성공에 이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사실적인 면이 많기는 하나 그 근거가 좀 빈약해 보인다.

또 다른 설명으로 한국의 가부장적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아무래도 남자들은 수직화된 직장 생활이나 가정문화 속에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이 이유라고도 한다. 좀 더 나아가서는 한국의 남자들이 가정의 모든 문제를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는 혼자서 최종적으로 책임을 져야하는데 그 무게가 남자들로 하여금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경제중심의 사고로 인해서 한국의 남자들이 자아정체성을 형성하고 삶의 의미를 만들어갈 수 여건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될 때 삶의 의미를 잃게 되고 주변이 주는 관계적 스트레스에 견디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1.4 자살의 경향: 자살의 급격한 증가추세

셋째 경향은 급격한 자살의 증가 추세이다.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바와 같이 1997년 말에 찾아온 IMF가 가져다준 충격은 급격한 자살률의 증가를 가져 왔다. 바로 전 해 즉 1997년 자살로 인한 사망률은 14.1이었던데 반해서 1998년 19.7로 그 숫자에 있어서 6022명에서 8569명으로 2547명이나 증가했었다. 그러나 그 이후 3년간 감소 추세를 보였다가 2002년을 시작으로 다시 급등하기 시작한다. 2000년 14.6명 2001년 15.5명이던 자살률은 2002년 갑자기 19.1명으로 거의 IMF 이후 수준으로 올라가기 시작하여 이후 2003년 24.0명 2004년 25.2명 2005년 26.1명으로 아주 급격하게 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증가추세에서 눈여겨 볼 부분은 무엇보다 먼저 최근에 늘어나고 있는 자살률의 급증상황이다. 10년 전 통계인 1995년에는 자살률이 11.8명으로 2005년도에 비해 무려 14.3 포인트나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10년간 자살률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자살이라는 현상이 최근 10년간 급격하게 나타난 현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 주목하여 살펴볼 바는 2002년 이후의 증가추세이다. 우리가 쉽게 생각해 볼 수는 있는 IMF의 충격 이후의 자살이 의외로 그렇게 높게 나타나고 있지 않다. 물론 1998년의 가파른 증가는 있었지만 그러한 현상은 오히려 그 이후에 또 쉽게 진정되어 졌다. 오히려 2002년을 기점으로 급격하게 증가하였고 2003년 역시 전년도에 비해 자살률이 5 포인트 증가하였다. 2002년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월드컵을 통하여 사회적으로 상당히 고무적인 상황이었고 나름 활력과 가능성이 엿보였던 때였다. 거기다 연말에 있었던 대선까지 생각해 보면 나름 여러 가지 상황이 자살이라는 암울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사회는 자살이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 변화가 사람들을 정신적 혼란으로 몰아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8년의 현상은 경제적 문제로 일시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면 2002년 이후는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 이념적 혼란으로 인한 사람들의 가치관 혼란이나 정체성 혼란으로 인한 아노미적 상황에 의한 자살이라고 이해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도별 자살률

통계적 수치를 통해서 위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는 일정한 자살의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먼저 장년층의 자살이고 둘째는 남성의 자살 셋째는 최근 나타난 급증현상이다. 이 세 가지 경향성을 종합해 보면 한국사회의 자살은 장년 남성층의 아노미적 자살에 의해 큰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생이 성숙되어져 가야할 시기이며 동시에 가정이나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야할 30대와 40대 남성들의 자살에 우리는 관심을 기울려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이들의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가치관의 문제이다. 현재의 자살경향 그 뒤에는 경제를 가치의 준거로 보는 세계관과 자아정체성이 자리하고 있다. 이 시기는 장년 남자들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한참 경제적 책무를 다해야할 때이다. 그러나 고성장시기를 지나면서 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성장의 기대는 채워지지 않고 저성장으로 인해서 늘어난 소비에 비해서 적은 소득이 가장으로 하여금 심한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거기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쉬워진 구조조정과 조기정년에 대한 압박들이 현재의 30~40대 남자들을 위축되게 하고 있다. 직장이 있어도 안정감을 찾을 수 없고 늘어난 가정소비에 비해서 적은 수익이 가장으로 불안감을 가지도록 하고 있다. 더구나 조기은퇴로 인한 장기실업의 일반화로 더욱더 이 시기의 남자들은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가정은 이들을 넉넉함으로 품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기능의 상실로 보기 때문에 이 장년의 남자들은 존재이유를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나이의 장년 남자들의 자아정체성은 대개 직장에서의 지위나 월급으로 손쉽게 형성되어지고 하는데 이러한 존재의 토대인 직장과 경제적 수익의 상실은 곧바로 존재의 위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교회가 가능성을 가지게 된다. 다른 것은 몰라도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것이 자살이라고 하는 이 시대의 위험 속에서 사람들을 살리는 능력이 되어 줄 수 있다.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한 사랑만큼 이 세대를 살고 있는 한 생명 한 생명에 대한 사랑을 교회가 가져야할 때라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에서 그들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될 것이다.

2. 자살의 현실: 심층인터뷰

죽음. 그것은 두려움이다. 아직 겪어보지 못했고 그 이후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아마 이것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겪게 될 고통보다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의 본질일 것이다. 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또는 심각하게 다가갔던 사람 일곱을 만났다. 그들은 모두 죽음 이후를 이해할 수 있는 신앙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 죽음 앞에 섰고 그들의 삶을 이제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을 통해 ‘자살’의 의미를 살펴보고 사회적 연관성과 예방 가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2.1 자살에 대한 오해

이번 인터뷰 대상자 모두는 자살에 대해서 절대적으로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그 이유를 물어 보았을 때는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예를 들어 지옥에 간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사탄이 목숨을 가져가려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는 좀 더 논리적으로 지옥에 간다는 것보다는 ‘생명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라고 대답하며 자살도 살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었다. 또는 경험에 의해서 다른 설명을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D의 경우 지방의 작은 교회에서 신앙이 좋다고 하시는 두 분의 자살을 경험하면서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자살한 사람들이 반드시 지옥에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그는 “자살을 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지옥에 갈 것인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었던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했다고 해서 지옥에 간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자살에 이르기까지 물론 신앙이 있으면 또 극복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에서 정신적인 심한 우울증이라든가 그것은 일종의 병이잖아요. 그런 것으로 해서 자살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해요.”라고 잘 정리된 언어로 명확하게 이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F의 경우 자살이 정신적인 문제라고 대답하다가도 신앙이 전제된 사람은 자살을 생각 안할 것 같다고도 대답을 하기도 하고 정리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C의 경우 자살에 대해서 교회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답변을 하면서 그 이유를 ‘교리에도 나와 있잖아요. 자살은 최고의 악이라고.’ 이야기하고 그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셨느냐는 질문에 ‘성경에서도 본 적이 있고 장경동 목사님이 설교할 때 그 이야기를 많이 해요. 기독교방송에서 그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것을 보면 자살은 죽어도 안 된다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라고 답변을 했다. 상당히 상식적인 대답이면서 그것에 대한 확신으로 성경에서 보았다는 대답까지 하는 것을 보았다. 성경에는 자살에 대해서 우리가 우회적으로 얻을 수 있는 근거는 있지만 직접적으로 언급된 부분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그의 대답은 자신이 얻은 상식에 더한 확신으로 밖에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것들을 살펴볼 때 교회에서 자살에 대해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들 모두가 자살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들었던 상식 밖에 없고 그러한 상식들이 일관되어지지 않고 정확하지도 않기 때문에 여러 가지 오해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살하면 지옥 간다는 단순한 생각이 과연 오늘날 만연되어진 자살의 경향 속에 사는 우리들에게나 자살로 주변의 사람을 먼저 보낸 유가족이나 친지들에게 긍정적이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을 생각하면 이 문제를 교회에서 진지하게 다루어 보아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2.2 자살의 원인: 남자는 충동 여자는 우울

인터뷰는 5명의 남성과 2명의 여성과 진행되어졌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남성은 모두 상당히 충동적인 면이 강했고 여성들은 모두 오래된 우울증으로 심한 경우 한 여성은 정신분열로까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남성들의 경우 대상자 모두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외부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사업의 실패와 사기 동생의 죽음 가정의 불화 가정의 불행 등이다. 이들은 모두 순간적으로 또는 단기적으로 자살에 근접했었으나 그 위기를 넘기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자살의 위험에서 벗어나 있었다. 예를 들어 A의 경우 동생의 죽음으로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도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자살의 위험에 심각하게 들어갔으나 그 자살에 대한 생각이 어느 때부터 사라졌는지는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냥 이사를 해 다른 환경에 들어가고 새로운 교회 공동체 안에 흡수되면서 삶이 바빠지고 어느 순간 그러한 생각에서 놓임을 받았다는 것이다. G의 경우 모범생으로 순탄한 삶을 살다가 부부관계의 어려움 가운데 인생에서 처음 겪는 충격에 순간적으로 며칠간 아파트 베란다를 서성거렸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내면적으로 그 문제는 극복되어졌고 신앙은 그를 더욱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는 장기간의 우울증이 작용을 하였다. B의 경우는 불우한 가정환경이 계속적으로 작용을 하였고 그것이 장기화되면서 정신분열로까지 이어진 경우이다. 현재까지도 그러한 어려움이 있어서 자매들과 겪는 고통이 심했고 격한 감정에 자살을 시도했었다. 그리고 F의 경우는 산후우울증과 건강의 어려움 때문에 몇 년 간에 걸쳐서 우울증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아이에 대한 원망과 교회생활의 어려움 등이 있었는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하고 새로운 교회로 이전을 하면서 그러한 우울증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가 자살에 대해서 대처하는 방법은 자살의 원인이 다양한 것과 같이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되어져야한다고 본다. 요즘 일반적으로 이해되어지는 우울증이라는 생각은 남성들에게는 제대로 된 이해를 저해할 수도 있다. 자문을 얻은 한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 의사는 선천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설명하며 이러한 분석이 과학적임을 뒷받침해 주었는데 그는 이를 간단히 설명하여 남녀 간의 호르몬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로 이야기해 주었다. 따라서 자살에 대한 예방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우울증상이 보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형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포괄적으로 천하보다 귀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마음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것을 또한 너무 신앙적인 잣대로 재단하게 될 때는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어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특히 F의 경우는 자신이 우울증을 겪던 때를 성령이 떠났던 때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스스로 눈을 감고 생각할 때는 자살의 유혹과 함께 하나님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자살의 문제를 단순히 신앙이 없어서라고 판단하고 기도하면 된다는 식의 단순한 권고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강조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2.3 자살의 예방과 교회

몇몇 사람들이 지적해 준바와 같이 교회에서 자살에 대한 프로그램을 갖는 것은 찬성하지만 과연 그러한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든다. 자살이나 우울증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하게 되면 사람들이 거기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인정하고 밖으로 보이는 것이 되기 때문에 꺼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좀 포괄적인 교육으로 설교나 성경공부와 같은 프로그램 가운데서 때때로 인간의 생명의 존귀함과 그 존재의 귀중함을 일깨워주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것이 전문적인 지식이나 관점을 가지지 못한 성도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삶의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다잡을 수 있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C의 경우 방송설교에서 들은 내용이 자신의 중요한 관점이 되기도 하고 F의 경우는 심방오신 목사님이 기도를 해 주면서 참 힘들겠다는 말 한마디에 펑펑 울고 신앙을 다 잡고 기도로 고비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도 해 주었다.

특히 신앙과 연결하는 것의 문제점을 더 지적해 본다면 이번 인터뷰에 응해준 사람들 모두가 신앙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이었고 교회의 가르침이 자살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자살이라는 상황 속에서는 다른 것을 생각해 볼 여력이 없었거나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A의 경우 자살을 심각하게 생각할 때는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몇 달간 자동차를 시속 200km 씩 달리고는 했는데 그 기간에도 저녁때는 교회에 가서 열심히 기도하곤 했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초기에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통곡이었다고 할지라도 그는 열성적인 신앙의 자세를 당시 가지고 있었다고 보인다. 즉 죽어야겠다는 생각에 머물게 되면 이성이나 신앙이라는 것들이 별 영향을 못 미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F의 경우 잘 설명을 해 주었다. 그녀는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는데 아이를 칼로 찔러 죽이겠다는 상상을 해서 스스로 두려움에 집안에서 칼을 숨기기도 하고 자신도 심각한 자살의 위험 가운데 있었다. 그녀의 증언이다. “눈을 감으면 그 때는 나 밖에 생각이 안 났어요. 내가 어떻게든 살아야 되는데 눈을 감으면 내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고. 이런 생각까지 했어요. 약을 먹고 죽어 버릴까. 하나님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이렇게 방치해 놓는데 내가 그 동안 믿었던 하나님이 없었나보다 착각이었나 보다.” 즉 자살생각 가운데 있을 때는 또는 그러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는 다른 어떠한 것이 영향을 못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적으로 자살의 마지막 순간에 그들이 붙잡은 것은 신앙이라기보다는 ‘어머니’였다. 우울증의 경우는 그 나마도 끼어들 여지가 없었지만 남성들의 경우 특히 A C G의 경우 늙으신 어머니가 자신이 죽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하는 생각에 그 행동을 멈추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러한 증언들을 토대로 생각해 볼 때 자살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프로그램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그 예방적 차원에서 포괄적인 개념의 교육이 반드시 전제되어야할 것으로 보이고 이를 위해서 설교나 교육을 담당하는 목회자나 교회지도자들에 대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이런 의미에서 좀 더 포괄적으로 얘기해 본다면 우리 성도들에게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교회는 노력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C나 F의 경우는 전형적인 아노미적 자살의 예로 볼 수 있는데 C는 경제중심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는 경우였다. 그는 한 때 컴퓨터 계통의 사업을 잘 하였었으나 사업의 실패를 경험하고 연속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는 신앙생활도 경제문제로 좌우된다고 이야기한다. 십일조를 못 내서 떳떳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도 하고 그런 모습이 남들에게 보일 때도 안 좋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업의 실패로 인해 순간적으로 또 그 결과가 장기적으로 연속되어지니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F의 경우는 결혼 전에 직장 생활도 하고 나름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신혼 때 까지는 이어졌는데 당장 아이를 낳게 되니까 어렵게 된 것이다. 직업상 자유로운 예술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이로 인해 얽매이게 되고 신앙생활도 쉽지 않게 되니 심한 우울증에 걸리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 드는 생각이 아이가 하나님의 선물이라지만 너무 힘들다는 오히려 내 인생의 걸림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표적인 아노미 현상인데 높은 기대치에 비해 그것이 이루어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것 바로 이 가운데서 나타나는 갈등을 아노미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둘의 치유는 일상의 회복을 통해서 일어난다. C의 경우는 사업으로 또 한 번 한탕 하겠다는 생각을 접고 육체노동을 통해서 서서히 일을 시작하면서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았고 F의 경우는 새로운 교회에서 찬양 가운데 치유함을 얻고 삶에 대한 긍정을 되찾게 되었다. 즉 삶이 없는 경제중심의 사고나 한탕주의 그리고 과도한 기대들이 우리 삶을 뒤흔들게 되고 안정을 빼앗게 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나타나는 아노미는 뒤르켐의 이야기처럼 자살의 중요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바른 가치관과 세계관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일상에 대한 바른 접근을 교육시켜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일상의 긍정과 회복 그리고 그 가운데 자신을 보이시는 하나님의 신비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교회는 힘써야할 것이다.

이러한 포괄적인 개념의 교육을 위해서 교회는 목회자들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할 필요가 있다. 자살에 대한 바른 이해를 줄 수 있고 더 나아가 그 원인과 분석까지도 가능할 수 있게 만들어 줄 때 그들의 설교나 교육은 잘 못된 생각으로 나아가고 있는 성도들을 구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에 대한 교육이나 일상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나 이 땅에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목회자들을 교육해야한다. 그들이 자신의 어려움에 코를 박고 있는 사람들에게 넓고 크게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단지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우리를 극단에 서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사고의 차이다. 인간의 고통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신앙으로 훈련되어진 사고가 그러한 위험 자체를 경험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괄적 개념의 교육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 되어질 수 상담소 역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번 인터뷰에서 C와 G는 동일하게 가톨릭의 고해성사를 언급했다. 우연이라기보다는 그 둘이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그러한 고해성사가 절실했었을 수 있다. 남자들의 경우는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 놓기를 꺼려한다. 심지어 아내에게 조차도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내어 놓지 않았고 친한 친구에게도 그러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내어 놓지 못했다. 그러한 답답한 심정에 가톨릭의 고해성사가 부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개신교의 경우는 목회자나 주변 교인들에게 자신들의 문제를 내어 놓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어색한 부분도 있고 그런 것이 일반화 되어 있지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지역적 연대 가운데 상담소를 운영하는 것을 제안해 본다. 지역교회들이 경제적으로 후원하고 지원하며 그러한 연대 가운데 있는 상담소를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광고 가운데 소개하고 주보에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것이다. 언제든 어려움이 있는 사람은 익명으로 상담을 받을 수 있고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평소에 인지시켜 놓으면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B의 경우는 이러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알지 못해서 그 자신이나 가족이 힘들어 하는 상황에 있었다. 이번 인터뷰 과정에서 상담소를 소개해 주고 인터뷰 과정도 상담전공자가 주도했었는데 그러한 곳을 소개 받은 것 자체를 상당히 감사했었던 기억이 있다.

3. 글을 마치며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이제 교회는 전방위적인 대책으로 나서야할 때라고 본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고 포괄적 개념으로 대책을 세워야한다면 너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에 관한 일이기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행해야할 때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교회는 자살에 대한 연구가 가능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한다. 현재 한국교회는 자살에 대해서 막연한 통념적 이해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이 자살에 대해서 연구하고 논할 수 있어야한다. 그래서 현재 이루어지고 심리학 상담학 윤리학적 접근에서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이해를 만들어야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사망원인 4위에 이른 현 상황에서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자살에 대해서 어떤 대답을 해 줄 수 있을 지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한다. 그 바탕 위에서 교회는 다양한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특히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교육을 선행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처럼 개 교회 주의의 상황에 그 교회를 감당하는 목회자의 역할을 무엇보다 크다고 하겠다. 그런 목회자들이 그냥 자살하면 지옥 갑니다하는 협박과 저주만 늘어놓는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특별히 남은 자들에 대한 배려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그 심각성은 더하다고 본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 생명을 살리는 일에 적극적을 나서야할 때가 되었다.

한글초록

한국사회에서 자살은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2005년 사망원인통계결과를 보면 한국사람들의 사망원인 4위가 자살로 나왔다. 그만큼 자살은 그 어떤 질병보다도 심각한 한국사회의 문제가 된 것이다. 그 통계를 복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세 가지 경향이 있다. 첫째는 장년층의 자살이 많다는 것이다. 둘째는 남성들의 자살율이 높다는 것이다. 셋째는 최근 그 경향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교인 7명과 이루어진 심층인터뷰를 통해서 나온 결과는 자살에 대한 바른 이해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쉽게 우리는 자살한 사람들은 신앙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하는데 심층인터뷰를 보면 그들이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 순간에 신앙이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살에 대해서는 교회가 막연한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살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과 예방대책

이기춘 이사장 (한국생명의전화 전국연맹(FOLK)회장 전 감신대 교수)

Ｉ. 자살의 뜻

자살(suicide)이란 단어는 구약이나 초기의 기독교문헌에 나타나지 않는 단어이다 이 말이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Edward Phillips 의 New World of Words라는 사전이 출판된1662년이다. 그는 이 말을 야만적인 말이라고 해석하고 라틴어의 대명사인 sui(자기)대신에 sus(돼지)에서 유래 되었다고 보고 인간이 자신을 살해하는 돼지 같은 성격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다. 이 말의 적합한 뜻은 1651년 Oxford English Dictionary가 출판되면서 라틴어의Suicidium 곧 자신을 살해한다는 뜻으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바로 잡게 되었다.

Ⅱ. 성서의 관점

유대사상 속에서 자살은 분명히 금기시 되었다. 자살행위는 생명의 존엄성 인간의 품위 개인의 가치를 손상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생명은 살인죄 성적부도덕 우상숭배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존되어야하는 존엄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유대사상 속에서도 두 가지 극단적인 경우에는 자살은 예외적인 것이었다.

첫째로 유대인으로서 신앙을 배반하도록 강요를 당할 경우.

둘째로 치명적인 죄를 지었거나 전쟁 중 포로가 되거나 불명예를 당하게 되는 경우.

그 밖의 경우에 자살은 중립적으로 묘사되었다.

1. 구약의 사례

1) 아비멜렉 : 여인이 성위에서 던진 맷돌 짝에 두개골을 다치자 병사에게 명하여 자신을 죽이라고 명령함(사사기 9:50-54)

2) 삼손 : 머리카락이 자라나서 힘이 회복되자 불레셋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리고 자신도 죽었다.(사사기16:25-30)

3) 아히도벨 : 압살롬과 손을 잡고 시도한 다윗에 대한 반역이 실패하자 목을 매 자살함(사무엘하17:23)

4) 사울 :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상황이 불리해 지자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에게 죽기 싫어 자기 칼 위에 엎어져 자살함. 무기당번도 같은 방법으로 자살함(사무엘상31:3-5 사무엘하1:9-10 역대지상10:4)

5) 시므리 : 오므리의 공격으로 디르사가 포위되자 왕궁에 불을 지르고 불에 타죽음(열왕기상16:18)

6) 라지스 : 예루살렘의 원로 애국자 라지스는 니가노르의 공격을 받고 자기 칼로 배를 찔러 창자를 뽑아 항의 하며 자살함((마카베오하14:43-46)

2. 신약의 사례

1) 가롯유다 : 스승을 배반한 유다가 은돈을 성전에 내던지고 물러가 목을 매 자살함(마태27:5)

2) 바울의 간수 : 지진으로 감옥문이 열려 죄수들이 도망간 줄 알고 간수가 자살을 시도하자 바울이 만류함 (사도행자16:28)

3. 그 밖의 사례

1) 토라 : 토라는 특별하게 자살을 금지하는 내용은 없으나 랍비들의 전통은 자살에 대해 부정적이면서도 예외를 인정한다. 곧 하나님의 이름에 누가 되는 큰 죄를 범하게 되는 경우에 예외를 인정한다.

2) 마싸다의 집단자살 : 기원 74년 로미군 에게 포위되어 3년간을 버티다가 야이르(Eleazar Ben Jair)가 지위하던 960명의 유대인들은 아내와 자녀들을 살해한 다음 서로를 죽임으로 집단자살을 실천함.

이상의 사례에서 보면 전쟁 중 불명예를 당하거나 신성모독의 위험이 있을 때는 자살이 전통적으로 자행 되었다. 신약의 사례는 죄책감이나 책임완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자살을 시도 하거나 실행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살은 창조주의 뜻에 반하는 것 이였다.

Ⅲ. 중세의 관점

중세기에 진입하기 전 그리스-로마시대는 자살에 대한 관점이 더욱 다양해 졌다. 플라톤은 예외를 두기는 했으나 대체로 자살에 대해 반대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살은 비겁한 행동이고 국가의 정책에 반하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에피큐리안학파와 스토아학파는 자살을 인간 자유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로마시대에 와서는 정부는 공식적으로 자살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면서도 원로원에서는 자살에 도움을 주는 맹독(hemlock)이 포함된 약물을 공급했다. 로마시대에 자살은 빈번하게 자행되었다. 군중 앞에서 공격적인 자살도 이루어 졌으며 반역죄를 저지른 경우 온 가족이 자살하도록 압력을 받았다. 중세기는 이런 전통을 이어 받으면서 자살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졌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많은 크리스천들에게 자살은 매력적인 것 이었다 그 이유는 순교를 통해서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교회는 순교자의 가족을 돌보았기 때문에 4세기까지 이런 풍조가 이어졌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삶은 다음 세계를 준비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지 이 세상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거스틴에 따르면 이단으로 규정된 북아프리카의 Donatists와 Circumcellions 신자들은 집단으로 높은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감행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자살은제 제 6계명에 반하는 것이라고 저주했다. 그는 삼손과 아브라함의 이삭을 바친 행위는 하나님이 인정한 것이어서 일반적 자살과 다르다고 했다.

Arles 공의회(452)는 자살을 논의하기는 했으나 노예들의 자살을 반대했고 자살자는 마귀에게 사로잡혔다고 보았다. Braga 공의회 (563)에서 비로소 자살자와 그 가족에 대해 엄한 책벌이 부과되기 시작했다. 곧 이들에게는 통상적인 장례를 치루는 일과 성례전과 시편을 노래하는 권리가 박탈되었다. Auxerre 공의회(578) 는 자살자로부터 어떤 봉헌물도 받을 수 없게 하고 자살에 대해 전반적인 저주를 선언했다. Toledo 16차 공의회(693)는 자살 시도자는 2개월간 교회출석을 금지 시켰다. 그러나 829년에 출간된 참회서 (Penitential)는 정신병자로 자살한 신자에게는 미사와 기도를 제공받게 했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1823년까지 유지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자살자에 대한 처우가 더욱 잔인하게 다루어졌다. 자살자의 시체는 거리를 끌고 다니다가 단두대에 매달았다.

Danzig(현재의 Poland일부)에서는 자살자의 시체를 출입문으로 운반하지 못하게 하고 창문을 통해서만 옮기게 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중세기에는 자살자의 재산을 국가나 교회가 몰수했다. 3세기에 와서 성아퀴니스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서 자살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자살반대의 입장을 3가지로 그 근거를 제시했다. 첫째 자기 파괴는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다. 둘째 인간은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자신의 존재와 활동을 박탈 할 권리가 없다. 셋째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생과 사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할 수가 없다. 어거스틴-토마스가 형성한 자살에 대한 견해는 오늘 날 가톨릭의 자살 이해에 근간을 이루고 있다.

1. 중세기의 사례

1) Jean-Claude Schmitt의 통계

남자는 여자보다 3배나 더 자살한다. 목을 매다는 방법이 가장 많다. (54건 중 34건). 다음으로 물에 빠지기(12건) 칼로 찌르기 높은 곳에서 뛰어 내리기 등이다. 계절적으로는 3 4월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7월이다. 3 4월은 사순절 행사로 금식 때문에 신체가 허약해진 원인으로 볼 수 있고 7월은 힘든 농사일 때문이다.

중세기에는 소작인과 농부들의 자살율이 가장 높았다. 이 통계는 오늘의 통계와도 유사하다.

2) Bracton의 연구

중세기의 자살은 굶주림 질병 빈곤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별 투옥 고문에 대한 공포 때문에 시도 되었다. 이러한 원인으로 살고 싶은 의지를 상실 할 때 이를 광증으로 판단했다. 광증으로 죽은 이의 재산은 정부에 의한 재산몰수를 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살원인을 광증의 결과로 증명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다.

중세기는 자살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자살자의 시신에 치욕을 주려고 하여 매장도 금지하고 재산도 몰수했다. 성직자가 자살하는 경우 교회 묘지에다 매장하는 것도 금지했다.

Ⅳ. 종교개혁 이후의 관점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면서 자살에 대한 부정적 관점은 보편화 되었다. 중세 시대의 스콜라 사상은 기독교 사상과 제휴되면서 자살을 죄악으로 인지하게 되었다. 특히 16세기는 코페르니쿠스 루터 몽테이뉴를 삼각점으로 하는 문화적 혁명의 시대가 되었다. 루터는 복카치오와 에라스무스의 뒤를 이어 르네상스 시대의 증가하는 자살현상을 목도하게 되었다.

루터는 1542년 독일 안에서 증가하고 있는 자살현상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자살은 마귀에 의해 감행되는 살인이라고 했다. 그는 자살은 인간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의 짓이라고 규정 했다. 루터는 1544년 12월 1일 자살한 한 여인을 매장 해준 목사의 행위는 비판받을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 이유는 이 여인은 사탄의 희생물일 뿐이기 때문 이라고 했다. 이는 자살자에 대한 처우를 루터는 가톨릭교회 보다 완화시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빈도 자의적인 자살에 대해 반대했다. 그는 여타의 개신교 신학자과 도덕론자들과 같이 자살에 대해 반대 입장에 동조했다. 칼빈은 자살은 생사여탈권을 지닌 하나님의 절대성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경제적 가치가 우선시 되면서 선은 풍요이고 악은 가난으로 치부되어 가난한 이들 사이에서 인생고 때문에 이루어지는 자살에 대해 교회는 죄악시 했다. 18세기 프랑스에서는 당대의 사상적 지도자인 루소와 베카리아(Cesare Beccaria)등은 이전 시대가 자살자에게 부과했던 가혹한 처사를 경험적 관점과 비판적 이성으로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흄은 1783년 에 󰡒자살이론󰡓(Essay on Suicide)을 통해 자살이 하나님 이웃 자신에 대해서 증오할만한 죄라면 이를 증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킬 가치가 없는 삶을 포기하는 것은 죄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괴테의 1774년 작품 「베르테르의슬픔」(Sorrows of Werther)은 자살을 낭만적으로 서술하여 오늘날 베르테르의 효과라고 부르는 문화적 풍조를 형성하기도 했다. 1800년에 와서는 엄격한 종교적 규제가 자살예방에 효과적이 아니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심리학자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갔다. 제임스(William James)는 1897년의 논문󰡒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Is life Worth Living)에서 사람이 자살하는 이유는 신앙 때문이 아니라 신앙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 하면서 건강한 종교와 삶의 온당성을 연계시켰다.

프로이트는 삶의 본능(Eros)과 죽음 외 의 본능(Thnatos)이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갈등을 일으킬 때 원초적 자아(id)가 등장하며 자기 파괴적인 행위가 증가할 때 나타나는 것이 자살행위라고 해석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문화적 심리․사회적 변화를 고려하면서 자살자와 그 가족에 대해서 자살은 수용할 수 없는 생명창조에 반하는 악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유가족과 친족에 대한 공감적 이해와 자살예방을 위하여 저주와 심판이 아니라 제2의 희망을 제공하는데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가톨릭교회도 자살자에 대한 정중한 예식과 유가족에 대한 따듯한 위로를 베풀 것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목회상담분야에서는 애도 상담을 통해 사별의 슬픔과 절망을 극복하는 목양적 돌봄에 심층적 교육을 시도하고 있다.

2. 현대적 사례

1732년 스미스(Richard Smith)라는 영국인 내외가 어린 딸을 살해하고 자신들도 목을 매 자살했다. 그리고 그들은 장문의 유서를 남겼는데 그 내용은 찌든 가난에 허덕이면서 더 이상 삶을 지탱 할 수 없었다는 눈물겨운 호소문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살은 보는 시각에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Ⅴ. 자살예방을 위한 전략개발

인간의 자살행위는 자연히 소멸되거나 감소하는 자연현상과는 다르다. 인간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자살을 저지르기 때문에 인간의 동기와 의지를 변화시키는 교육 가치관의 변화 인식의 전환 등을 이끌어 내는 체계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다음의 몇 가지 점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자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요청된다. 이제 자살은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국가적 문제가 되었다. 자살의 원인은 경제 교육 문화등 사회적 조건들이 상당부분을 제공하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대응책이 필요하다. 1958년에 설립된 미국의 로스엔젤리스 자살방지센터는 국립정신건강 연구소(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1999년에는 국립 자살 예방 전략 연구소까지 설립되었다. 일본의 「이노찌노덴와」 프랑스의 S.O.S Amitie등은 모두 국가적 사회적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어 그 역할이 제 몫을 감당하고 있다.

둘째 정신건강의 의의가 재인식되어야 한다. 경제적 성장만이 국가적 목표가 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이 소극적이다. 자살과 장애등은 정신건강이란 차원에서 교육과 재교육을 일반화 시켜야 할 긴급 과제이다. 특히 청소년들에 대한 정신건강교육은 교과목으로 설정해도 좋을 것이다.

셋째 급격한 가족해체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세계 각국의 청소년들의 자살원인의 가장 큰 원인은 가족 체재이다. 가정을 지키기만 하면 문제가 해소된다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경우 4명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는 가정은 자살율이 높고 어머니가 직장을 가지고 있는 가정의 자살율이 낮다는 것은 가정생활의 방식과 질이 문제가 되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대가족으로부터 핵가족으로 다시 가족 해체로 인한 원시 가족으로의 복귀현상은 가족 구조와 기능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하는 징조이다.

넷째 건강한 문화 비판적 사고가 요청된다. 청소년들의 자살충동을 부추기는 요인 중의 하나가 현대문화의 속성이다. 죽는 장면을 되풀이해서 보여주는 TV와 영화 속의 장면 인터넷 중독에 빠지게 하는 정보체계 학업의 실패는 곧 인생의 실패라는 자기애적 사고의 가치관은 생명 경시의 풍조를 만연시켜 청소년 모방 자살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섯째 사회적 지지망의 중심으로서의 상담기관들의 체계적 교육의 심화가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일본의 「이노찌노덴와」 미국의 자살방지센터 프랑스의 SOS. Amitie등은 자살문제에 대응하는 유능한 자원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기관들은 「생명의 전화」와 같이 자원봉사자들과 전문가로 구성된 민간 조직이다. 이 기관들이 제몫을 감당 하는 데는 의료 사회봉사 지역 자체 단체등과 지지망(Supporting network)을 구축하고 있다. 이 지지망은 중심점을 필요로 하는데 시민의 봉사와 국가의 행정력이 제휴할 때 생겨난다. 그러나 자살예방운동에 전념하는 민간기구들이 교육 봉사 기능을 체계화하고 활성화 될 때 모든 지지망의 신경다발이 제대로 작동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자살예방 법안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적 상황에서 민간 봉사 기국의 체계적 교육의 준비와 지지망 구축은 자살예방의 성공여부를 결정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

Ⅵ. 맺는 말

오늘날 기독교가 자살문제에 대해 전념하여야 할 과제는 자살에 대한 교리적 규범이나 비판적 해석이 아니라 효과적인 자살예방 대응책을 강구하는 일이다. 자살은 어떤 경우에도 미화해서는 안 되며 생명존중에 반하는 파괴적 행위이다. 이미 언급한대로 자살행위는 하나님의 생명창조에 어긋나는 파행이다. 오늘의 기독교가 자살예방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전 세계적으로 공헌하고 있는 점은 전화 상담을 통한 자살예방 운동이다. 1953년 웨스트(W.Peter West)목사와 바라(Chad Varah)목사가 “선한 사마리아 사람”(The Good Samaritan)이라는 전화 상담 기구를 창설하고 사람들의 자살위기에 개입했다. 그 뒤를 이어 마르틴(Raynold Martin)목사도 “이포테스”(IFOTES : International Federation of telephonic Emergency Services)라는 전화 상담 기구를 만들어 유럽을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호주에서는 1963년 워커(Alan Walker)가 “생명의전화”(Life Line)를 개설하여 자살예방운동을 시작했는데 한국은 이 생명의 전화를 1976년에 도입하여 국제 생명의전화(Life Line International)에 정회원이면서 상임이사국이 되었다. 2009년부터 이 세 기구는 연합적 제휴를 이루어 “정서적 지원연맹” (ESA : Emotional Support Alliance)을 조직하여 전 세계를 커버하는 기독교 자살예방 및 위기개입 기구가 되었다.

한국생명의전화는 전국에 18개 센터가 있으며 호주 싱가폴 필리핀 미국 캐나다 연변 등에 해외교포들을 위한 위기개입 센터를 거느리고 있다. 이제 기독교는 OECD국가 중 자살율 으뜸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자살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조직망을 통해 대응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전화로 통화하는 생명의전화의 기본적 가치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발제3>

기독 의사가 바라보는 죽음

박상은 원장(안양샘병원)

의사들이 만나는 대부분의 임종환자는 주로 종합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경험하게 되고 그 대부분은 노련한 전문의사가 아닌 병아리 의사(인턴 또는 당직의)들이 죽음을 판정하게 됩니다.

저 역시 수련의 시절 제가 주치의를 맡고 있던 환자가 한나절에 여섯 명씩이나 임종하는 것을 지켜보며 허탈감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이토록 많은 환자의 죽음을 대하면서 우리 의사들은 최선을 다하기도 하고 때론 아쉬움과 미련이 남기도 하며 모든 것이 기계화된 첨단 의료장비를 조작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죽음에 대해 무뎌져가고 임종의 깊은 의미를 망각한 채 다분히 생물학적인 현상으로만 받아들이려하고 '죽음에 관해서는 더 이상 깊이 생각하거나 말하지 말자'는 어떤 불문율 같은 것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죽음을 앞둔 환자를 다분히 객체화하여 의사의 입장에서 늘 생각하기 쉽습니다. 제가 경험한 임종도 환자 입장에서 보면 환자가 경험한 마지막 의사일 것이며 제 앞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던 많은 환자들에게 결국 저는 그들이 질병과 더불어 만났던 무수한 의료인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만나게 된 한 의사였을 것입니다. 의사를 떠나서 그에게 있어서 저는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었던 마지막 사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제 앞에는 임종을 맞이하는 한 환자가 누워있습니다. 마치 한 편의 대하드라마와 같고 출애굽기와도 같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회복될 수 없는 병마에 걸려 이리저리 시달리며 그 동안 여러 의사를 거쳐 이제 마지막 의사가 될 저에게까지 와 이렇게 제 앞에 누워있는 이 환자......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가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그가 만나던 수많은 사람들 역시 모두 멀어져가고 이제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것 가진 것 없이 신 앞에 서야 할 그 모습으로 지금 제 앞에 누워있습니다. 저 역시 그에 필적할 만한 우여곡절 속에 여러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한 끝에 의대를 지망해 드디어 의사의 자격을 취득했으나 달리 뾰족하게 이 환자를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초라한 한 내과의사로서 이 환자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토록 파란만장한 삶의 두 주인공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곳에서 마주 보게 된 것은 우연이랄 수 없는 신의 인도하심이라 생각되며 이 만남에는 측량할 수 없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땅에 수많은 의사가 있음에도 하필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저에게 이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맡기신 것은 저를 통해 이 환자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 모두는 죽기 마련입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나지 않은 것처럼 내가 원하지 않아도 죽음은 찾아옵니다. 어느 날 잘 뛰던 심장이 고요해지고 코 속을 들락거리던 바람이 잠잠해지면 나는 죽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죽음은 태어난 순서대로 오지 않으며 어떤 동기로 찾아올지 알 수 없기에 예측할 수 없는 신비에 싸여 있습니다. 그래서 위인들은 혼인집보다 상갓집을 찾는 자가 더 지혜롭다고 말하며 우리에게 매일 죽음을 준비할 것을 가르칩니다.

죽음은 마치 올림픽의 마지막 종목인 마라톤 대회와 같습니다.

40여 킬로를 최선을 다해 달려온 후 이제 결승점에 도달하는 선수와 같은 셈입니다. 좀 빠를 수도 있으며 늦을 수도 있고 물을 더 마시고 뛸 수도 있고 덜 마실 수도 있지만 모두 머나먼 길을 굽이굽이 돌아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도심과 강변을 거쳐 이제 메인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마라톤을 완주한 선수들을 열렬히 환호하며 영접하게 됩니다. 어쩌면 호스피스는 인생의 경주를 다 마치고 스타디움에 들어오는 선수들을 끝까지 격려하며 환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누구도 한 사람의 일생을 함부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테이프를 끊는 순간까지 그들을 격려하며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감격으로 일생을 마치도록 돕는 도우미들인 셈입니다.

치료할 수 있는 암은 우리를 훈련시키는 용광로이며 치료할 수 없는 암은 하나님께 정결한 모습으로 서기 위한 신부 대기실과도 같습니다. 가족과 의료진 그리고 우리 모두는 신랑되신 예수님을 신부가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아름답게 가꾸고 곱게 드레스를 차려 입혀 손잡고 신랑에게로 인도하는 길동무와 같습니다.

30년 가까이 내과의사로 곁에서 지켜본 죽음만도 어느새 3천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지만 제가 경험한 임종은 두 가지로 선명하게 구별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첫 번 부류의 사람들은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어떻게든 이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몸부림치며 저항하다가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은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알고서는 오히려 그 죽음을 맞이하러 반갑게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음 이후에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

임종을 앞둔 말기암 환우들에게 가끔 얄궂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왜 더 살고 싶으시냐고? 며칠 또는 몇 달을 더 사신다면 무엇을 하시겠냐고? 대부분 더 살고 싶은 이유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함도 아니고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며칠이라도 가족들과 함께 일상의 삶을 더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내는 주방에서 된장찌개를 준비하는 동안 자녀들과 마루에서 뒹굴고 놀았던 그 일상의 삶이 뼈에 사무치도록 그리운 것입니다. 늘상 지내왔던 일상의 삶이 그리고 늘 가까이 있기에 소중한 지조차 몰랐던 가족들이

임종을 남겨놓고서야 비로소 소중한 줄 깨닫게 됩니다.

이미 어머니와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저로서는 당연히 저의 죽음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죽음을 지켜본 의사인들 자신의 죽음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해병대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라는 구호처럼 기왕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지혜롭지 않을까요? 머지않아 다가올 나의 죽음을 예견하며 지금부터라도 언제 죽음을 맞닥뜨려도 주저하지 않도록 하루하루의 삶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가고 싶습니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였던 내일이며 나의 남은 생애의 첫 날이라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이 하루를 생명을 만끽하며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느끼며 성실히 살아가렵니다.

<에필로그>

마지막 크리스챤

I. 웬지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상태가 더욱 악화된 담낭암 환자를 놔두고 막상 집에서 잠을 자려고 하니 두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내과의사가 별달리 환자를 도와줄 수 있나요? 단지 죽어가는 환자 곁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는 일 외에는 말이예요.” 늘상 다른 사람에게 얘기해 온 나의 인생관이 이 죽어가는 현씨 앞에서는 무력해지고 나의 안락한 휴식을 취하려 한 것이 첫 번째로 마음을 괴롭혔다. 분명 오늘밤을 넘기시기 힘드실텐데.......또 한 가지는 벌써 두 차례씩이나 입원했음에도 복음 한마디 전하지 못한 것이 나의 심장을 가시처럼 찌르고 있었다. 더욱이 이 환자가 다시 입원했을 때 나는 간호사에게 이렇게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문간호사 지난 주 희망이 없다고 퇴원했던 현씨가 왜 오늘 다시 입원하는지 알아? 우리가 더 이상 도와드릴 것이 없잖아? 바로 나를 만나기 위해서지. 나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서는 나는 사흘째 까맣게 복음전하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었다.II. 잠자리에 들면서 내일은 기필코 복음을 전하리라고 마음먹었다. 다음날 새벽같이 병원으로 달려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환자는 밤사이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으며 혈압은 40/20이었다. 벌써 환자의 손발은 얼음장 같았고 동공은 커져 눈꺼풀너머로 돌아 가버렸고 주위에는 몇 명의 보호자가 이미 단념한 듯 엄숙하게 환자를 내려 보고 있었다. “아뿔싸 안 돼 이렇게 죽어서는 안 돼 한마디 복음도 전해 듣지도 못하고 숨을 거둬야 하다니?” 이렇게 무기력하게 물러설 수는 결코 없었다.III. 나는 간호사에게 도파민과 에피네프린주사를 놓도록 지시하고 만일 하나님께서 다시금 의식을 회복시켜 주신다면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하겠노라고 마음속으로 기도드렸다. 정말이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혈압이 100/70으로 올라오면서 환자가 눈을 껌벅이고 발음은 분명치 않지만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험에 비춰볼 때 2-3분만 지나면 환자는 마지막 숨을 거둘 것이 명확하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지? 어떡하나.......환자 곁에 가만히 무릎을 조아리고 차가운 두 손을 잡고 가만히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에피네프린 탓인지 그의 두 눈은 맹렬하게 나를 쳐다보았고 무언가를 다급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2분이 흘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어느덧 주위에는 대여섯 명의 보호자와 서너 명의 간호사들이 나와 환자를 에워싸고 소리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복음을 전해야지! 나는 무엇인가 얘기를 시작해야만 된다고 생각했지만 무슨 말부터 꺼내야할 지 도무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왜 진작 복음을 전하지 못했을까? 진작 복음을 전했더라면 지금 할 말이 많을텐데. “현씨 예수님 믿으시죠? 지금 천당 가시는 거예요. 예수님을 불러 보세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텐데...... 하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천당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 상태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한단 말인가? 어느덧 3분이 흘러가고 두 눈은 서서히 초점을 잃어가고 손끝에 와 닿는 맥박도 흐느적거리며 숨을 깊이 내쉬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외쳐댔다. “죽어도 괜챦아요 그렇죠?” 아니 왜 내가 이런 얘기를 외쳐댔는가? 죽어도 괜챦다니? 아니 죽어도 괜챦다는 말이 나오다니?...... 보호자들은 눈을 휘둥거리며 나를 쏘아보고 있는 것 같았다. 등 뒤에선 땀방울들이 내의를 적셔 차갑게 느껴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뭔가 계속 얘기해야 된다는 생각 외에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하나님 아세요? 바로 이 우주를 만드시고 우리를 만드신 분 말이예요. 그 분이 우리를 사랑하세요. 그래서 죄많은 우리를 살리시려고 그의 아들 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셨어요 들리세요?” 목청이 터져라고 외쳐댔다. 현씨는 마지막 힘을 내어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지 힘이 솟구쳤다. 그래 계속해야지! “그 예수님을 믿기만 하시면 되는거예요 네? 예수님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단 말이예요! 자 믿으시면 고개를 끄덕여 보세요 더 크게! 더 크게!!” 환자는 두세 번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손끝의 맥박도 안 잡히고 간신히 내쉬던 숨마저 멎고 두 눈만이 고요히 나를 초점 없이 응시하고 있는 듯 했다. 임종하신 것이다. 나는 두 눈을 감겨주고 영안실로 시신을 옮기도록 지시하고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다.IV. 밖은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흰 가운을 적시고 내 마음까지 적시도록 우두커니 서서 그동안 내 곁을 스쳐간 수많은 환자들의 얼굴을 가능한 기억해내려고 애써 보았다. 임종을 지켜본 것만도 수백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과연 나는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었는가? 현대의학으로도 별 달리 도와줄 것 없는 그들을 왜 하나님은 임종직전에 내게 보내셨을까?그래 내가 그 환자들에게 있어서 마지막 크리스챤이었지.......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수많은 만남들이었다. 그저 그는 내 앞에서 담낭암 환자였고 나는 그 앞에서 한 내과의사였을 뿐이었다. 그는 굳이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 정도의 치료쯤은 어느 의사인들 해 주었을테고 나도 굳이 그 환자가 아니더라도 많은 다른 환자들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마지막 크리스챤'의 모습으로 그 환자 곁에 있게 하셨고 무슨 일인가 일어나기를 기대하셨음엔 틀림이 없었다.현씨는 지금 어디에 계실까? 나를 원망하실까? 아니면 이해해 주실까?빗속에서 두 눈을 부릅뜬 현씨의 영상은 고개를 계속 끄덕이면서 내게서 멀어져갔고 이아침에 나는 그 현씨의 영혼 앞에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지나면 곧 수레바퀴 같은 하루일과가 또 다시 시작될 모양이다.

자살에 관한 설교지침

1. 자살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자살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회적 심리적 환경적 개인적 요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그것을 신앙 하나로 단정하여 말하는 것은 자살예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믿음이 없어서 자살했다거나 교회가 잘 못해서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자살에 대해 잘 못된 오해를 가져올 수도 있고 자살의 위험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도 더 심한 우울증을 만들 수도 있다.

2. 유가족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최근 자살로 사망하는 자들이 크게 늘었다. 이는 그만큼 많은 유가족들이 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설교 중에 이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자살한 사람들을 지칭하면서 ‘가족이 어떻게 했길래 죽기까지 했느냐’는 언급은 남은 자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언어사용이다. 안 그래도 가족의 죽음으로 죄책감을 가지게 될 것인데 그들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우울증 환자와 자살 예비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특히 교회 내에서 자살자를 언급하는 것은 피해야하고 그 유가족이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3. 자살의 방법이나 장소 자살의 경위는 상세히 묘사하지 않는다.

특히 자살의 방법을 언급하는 것은 모방자살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피해야하며 같은 의미에서 자살의 장소나 경위 등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는 것은 피해야한다.

4. 유명인의 자살을 미화하거나 영웅시하지 않는다.

유명인의 자살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자살을 정당화해서도 안되고 더군다나 미화하거나 영웅적 결단으로 설명해서도 안된다. 그들의 죽음도 동일하게 오늘 하루 자살로 죽을 수 있는 평균 33인의 한 명이며 작년 자살로 죽은 12 174명 중에 한 명일 뿐이다.

5. 자살을 고통해결의 방법으로 설명해서는 안된다.

자살자에 대한 동정심으로 자살을 어떤 한 문제의 결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언급은 자살에 대한 현실성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자살은 남겨진 문제들의 시작일 뿐이다.

6. 흥미중심이나 흥미로운 예화로 사용하지 않는다.

혹 설교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고자 또는 세태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자살의 문제를 자극적으로 언급하는 경우들을 경계해야한다.

자살방지를 위해 언급해야할 것들

1.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성경에서 보여주고 있는 생명의 강조점들을 언급하고 그것을 자살의 문제와 연결지어 설명한다. 특히 생명이 그 주인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확실히 한다. 나의 생명이라도 그 행위는 이미 생명을 죽이는 살인행위임을 명확히 한다. 더구나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생각할 때 자살은 신에 대한 반역이다. 또한 생명을 쉽게 대하는 언어적 태도도 피한다.

2. 자살의 사회적 심각성을 강조한다.

현재 한국사회의 자살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경각심을 가지도록 한다.

3. 어려움이 있을 때 상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소개한다.

교회와 동역하고 있는 상담소나 상담전화 등을 소개하고 주보에 기재하여 필요할 때 찾을 수 있도록 한다.

4. 자살의 현실을 설명한다.

자살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유족들의 아픔이 있고 해결되어지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음을 알린다. 특히 자살은 이기적인 선택임을 표현한다.

5. 자살 징후들을 소개한다.

자살의 징후들을 소개하여 주변에 자살의 위험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돕도록 한다.

6.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자살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교육한다.

7. 우울증을 영적문제가 아닌 정신보건의 문제로 소개하고 치료를 권한다.

우울증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고 이에 대한 대처를 어떻게 해야하고 치료할 수 있는 지를 소개한다. 특히 우울증을 영적문제로 보지 않도록 하고 치료해야할 질병임을 확실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