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 규 (감신대 교수: 종교사회학)

1. 머리말

한국에 개신교 복음이 전해진지 124년이 되었다. 그 동안 한국교회가 넓게는 국가와 민족과 사회를 위하여 좁게는 개인을 위하여 지대한 공헌을 했다. 많은 영혼을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발전에도 기여했다. 사회적 심리적 역기능의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일은 신앙적 측면에서나 사회적 측면에서 과소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우선 교회의 양적 성장이 멈추어버렸다. 사회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잃고 있다. 교회가 담당했던 커다란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향한 세상의 시선은 싸늘해져가고 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교회 갱신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어떻게 새로워져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탐구가 필요한 때다.

교회 갱신의 당위성은 한국교회가 하나 되지 못함으로 신앙적 사회적 역량이 약화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분열과 갈등의 모습이 교회 안팎으로부터 비판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시급한 과제의 하나는 연합과 일치를 지향하여 개인과 세계를 구원하는 일에 힘과 뜻을 모으는 일이라 할 것이다.

이 강연은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의 문제에 대하여 종교사회학적으로 논의해 보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먼저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헌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다음에는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의 실상 및 요인에 대하여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대안적 원리로 코이노니아 정신을 소개한 후에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몇 가지 과제를 제안하려고 한다.

2.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헌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헌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서는 현재 종교가 수행할 수 있는 사회적 심리적 기능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는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의 기능이다. 종교는 사회의 지배적이며 바람직한 가치와 규범을 정당화하면서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공통된 집합의식을 마련해주고 이에 따라 사회질서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계층들 사이에서 생겨날 수 있는 갈등을 해소하여 공동체성을 마련해 줄 수 있다. 둘째는 사회통제(social control) 기능이다. 종교는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을 야기하는 일탈행위를 예방하여 도덕성 확립에 공헌할 수 있다. 개인적 이기심과 욕망을 위해 저지르는 비윤리적 행위를 억제하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 셋째는 사회변동(social change) 기능이다. 종교는 사람들의 의식 태도 행위를 변화시켜 사회변동을 초래할 수 있다. 아울러 문제적인 사회상황에 대하여 비판하고 도전함으로 새로운 사회질서를 확립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종교의 심리적 기능은 주로 개인의 차원에서 수행되는 종교적 역할로서 역시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는 긴장-해소의 기능이다. 종교는 사람들이 직면하게 되는 재난이나 불행에 견딜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절망적인 삶의 정황에서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갖게 한다. 둘째 박탈-보상의 기능이다. 종교는 지위와 재화의 불평등한 분배로 인해 경험하게 되는 박탈감에 대하여 보상해 주는 역할을 한다. 박탈당하고 좌절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위로 용기 희망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 셋째 정체성과 소속감의 기능이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여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나아가서 소속감을 마련해 줌으로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한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사회적 심리적 기능을 활발하게 수행해 왔다. 선교 초기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문맹퇴치운동 계몽운동에 앞장섰고 의료 ․ 교육 ․ 복지의 개선과 향상에 중요한 공헌을 했다. 근대화된 많은 학교들이 개신교에 의해 세워졌고 새로운 지식과 학문이 소개되었다. 초기의 현대식 병원과 복지기관들도 대개 개신교에 의해 시작되었다.

한국교회는 또한 농민운동 여성해방운동에 있어서도 공헌을 했다. 특히 축첩제도 폐지와 절주 절제를 위한 운동을 폭넓게 전개하였다. 성서의 번역과 보급은 국민 계몽에 크게 기여했다. 전통적인 유교 가치와 대비되는 평등주의 개인주의(이기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가치와 인격을 중시하는 태도) 보편주의(정의나 사랑의 원리를 모두에게 적용하려는 태도) 가치관을 확산시켜 계층 간의 갈등이나 성차별 연령차별 지역차별의 문제 해결에 공헌하였다. 나아가서 개인의 존엄성 인간의 권리와 자유 평등과 정의 같은 근대화 가치를 제공했다. 개신교는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으며 독립운동을 주도하여 사람들에게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에 사회통합 사회통제 사회변형의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함으로 바람직한 사회적 공헌을 했다. 뿐만 아니라 빈곤과 질병 무지와 미신 차별과 억압으로 고통과 절망 가운데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는 점에서는 심리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감당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전통가치 특히 유교적 가치와의 갈등이라든가 불교나 민속종교에 대한 배타성으로 인한 긴장과 같은 역기능적 결과가 초래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분위기 지배적인 성향은 선교 초기 한국교회가 계층 간의 조화와 일치를 추구하여 사회적 결속을 촉진했고 근대화를 향해 사회를 변형시켰으며 올바른 삶의 지침을 통해 도덕성을 회복하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교 초기의 활발했던 사회적 종교적 활동과는 달리 일제 치하에서의 개신교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다.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교회에 대하여 일제의 집중적인 탄압이 있었고 한국교회는 점차 일제에 동화되어 신사참배까지 하게 되었다. 국가와 주권을 잃어버린 민족으로서 체념적인 삶을 살던 분위기에서 자연히 신앙구조도 사회변형적인 에토스가 모두 사라진 말세 지향적 내세 지향적 신앙과 개인구원적이고 신비주의적인 복음이 교회 안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보면 한국교회가 무기력증에 빠지게 된 것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을 맞은 후 1950년대까지 한국사회는 혼란과 격변의 시기였다. 해방의 감격은 잠시였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적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어 급기야 남북이 분단되었으며 1948년에는 남한에서만 총선거가 실시되어 독립정부가 수립되었다. 1950-53년 사이의 6.25 전쟁은 한국사회를 초토화시켰다. 경제적 피폐화 그리고 정치적 부패와 독재는 사회의 가치와 윤리체계를 마비시켰다. 따라서 사회 재건과 발전을 위해 한국교회의 역할이 크게 기대되었으나 교회는 불행하게도 이에 부응하지 못했다.

사실상 한국교회는 민족운동 사회운동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일제로부터 가장 탄압을 받았었기 때문에 해방을 누구보다 감격스럽게 맞이하였다. 또한 해방과 정부 수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미국이었고 그 배후에 기독교가 있다는 인식은 기독교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이승만의 독재정권을 비호함으로 기독교는 반민주적 반민족적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 다시 보겠지만 한국교회는 1950년대 분열의 추한 모습을 보이며 사회적 공신력을 잃기 시작했다.

한국교회에 새로운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은 1960년대부터이다. 이때부터 한국교회에는 두 개의 대조적인 기류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하나는 보수적인 복음주의 경향이며 다른 하나는 진보적인 에큐메니컬 경향이다.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적인 교회들은 본격적으로 신앙운동 부흥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한국교회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교회들은 복음화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1960년대 이후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 불만스럽고 사회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던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 위안과 희망을 주었다. 즉 한국교회는 당시의 문제적인 정치 경제 사회 상황에서 일종의 치유 보호 혹은 보상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 교회들은 또한 체제의 질서와 안정을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여기고 현상유지를 위해 노력함으로 사회통합에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

한편 한국교회의 또 다른 흐름은 진보적인 진영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그들은 한국사회 변동에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이들은 교회의 사회참여와 비판기능을 강조하면서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그리하여 정치적 민주화를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투쟁했다. 산업화의 부작용으로 생겨난 경제적 불평등으로 소외당하고 억압당하던 계층을 위하여 농민운동 노동자운동 도시빈민운동 등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사실상 그들은 한국사회의 정치적 민주화 경제적 평등화 사회적 복지화라는 발전적 가치를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90년대 이후에는 통일문제 환경문제 생명문제 등의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사회운동을 펼치고 있다. 한마디로 진보적인 교회들은 그동안 사회변동이라는 기능을 적절하게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한국교회의 양대 진영이 사회적으로 많은 긍정적 역할을 담당함으로 한국사회에 크게 공헌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각각 사회적 역기능을 초래하기도 했다.

3.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

해방 후 한국교회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종교 집단 내의 분열은 쉽게 갈등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와 반대로 갈등이 분열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한 분열과 갈등은 그 집단 안에서의 사회경제적 문제 지도력과 힘 그리고 비종교적 이익과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즉 종교내적 분열과 갈등은 집단 간의 이익에 대한 권력에 대한 주도권 쟁탈이 주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그 갈등은 신앙적인 신학적인 문제로 위장되는 수가 많다. 물론 종교내적 갈등이나 분열이 신학적인 이념적인 차이에서 생겨나는 수도 있다. 이것은 흔히 자유주의(혹은 진보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신학적인 문제에서 합리적 해석을 거부하고 전통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와 성서와 교리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려는 자유주의 사이의 신학적 차이는 신앙적 실천과 사회적 실천의 차이로 나타나 서로의 갈등을 야기하고 분열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의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내는 두 가지 주요인은 주도권(hegemony) 다툼과 신학적 이념(ideology)의 차이라고 하겠다.

한국교회의 분열은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선 일제 치하의 신사참배 여부의 문제로 생겨난 갈등 때문에 출옥 성도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개신교인들이 한국교회 최대의 교단인 장로교로부터 갈라져 나와 1951년 예장(고신)을 만들었다. 이어서 신학문제로 인한 갈등의 결과로 한국기독교장로회가 생겨났으며(1953) 대한예수교장로회 안에서도 이념 문제(특히 WCC에 대한 입장)와 주도권 문제로 예장(합동)과 예장(통합)의 분열이 일어났다(1959). 그 이후 쉴 새 없이 분열한 한국교회는 이제 그 교파가 공식적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만도 170개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 72%가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신앙이 보수적일수록 배타적이고 일원적(一元的) 성향이 강하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준다. 개신교의 이러한 분열은 신학과 신앙 유형의 차이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권력과 재산과 관계된 이해관계 지역갈등과 주도권 다툼에서 생겨난 경우도 많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분열은 결과적으로 교회의 에너지를 내적 갈등문제에 쏟아 부어 교회 갱신이나 사회 발전을 이끌어 낼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신뢰를 잃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국교회를 보수-진보의 양극화 구도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신앙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태도나 결과를 토대로 하여 보면 개신교 집단은 크게 두 부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숫자에 있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보수 집단이며 다른 하나는 진보 집단이다. 교단적으로 볼 때 예장의 거의 모든 교단과 성결교 침례교 오순절 계통의 교단들이 보수적인 신앙과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는 반면에 기장은 가장 진보적이며 감리교와 예장(통합)등은 다소 진보적 성향이 있는 교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개신교 두 집단의 교리적 신학적 차이는 크다. 보수 집단에 있어서는 개인구원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선교는 주로 ‘교회의 선교’(missio Ecclaesiarum: 선교의 목적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모으는 일이라고 봄)를 뜻하며 여기에서는 복음화(evangelization)가 중심 과제가 된다. 신앙의 표준은 무엇보다 정론(正論: ortho-doxia)에 있으며 교회의 핵심적인 기능은 선포(kerygma)이다. 복음주의(evangelism) 노선에서 부흥운동에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진보단에게는 사회구원이 더 중요하고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선교의 목적은 이 세계에 자유와 평등 사랑과 평화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도록 하는데 있다는 것)를 표방하면서 인간화(humanization)의 성취를 추구한다. 신앙의 표준은 정행(正行: ortho-praxia)에 있고 교회의 중심적인 기능은 봉사(diakonia)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큐메니컬(ecumenical) 노선에서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신학적으로 볼 때 개신교 보수 집단은 대체로 근본주의(fundamentalism)내지는 정통주의(orthodox) 신학을 확고하게 고수하고 있다. 근본주의란 성경을 철저하게 문자주의에 기초하여 그것의 무오를 믿음으로 성경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이나 비평을 전적으로 거부하는 성경관을 가지고 있으며 정통적인 교리나 신조를 굳게 지켜나가는 신앙적 신학적 태도나 입장을 말한다. 근본주의 신앙에서는 성령의 체험이나 중생의 경험이 강조되며 엄격한 도덕적 생활과 열성적 신앙생활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들은 신앙적으로 매우 배타적이어서 타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신앙 노선이 다른 타 교파에 대해서도 거부감을 나타낸다. 교회의 정치 및 사회 참여에 대하여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이며 반(反) 에큐메니컬 노선을 취하면서 자체적으로는 심한 교회 분열을 만들어 낸다.

개신교 진보 집단은 성서에 대하여 문자적 이해보다는 해석적이고 비평적인 연구와 이해를 한다. 소위 자유주의라는 것이 이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에는 한국 고유의 문화전통에 근거하여 기독교 진리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토착화신학 혹은 문화신학 기독교와 타종교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종교신학 타종교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는 다원주의 신학 생태계의 문제를 기독교적으로 접근하는 창조신학 등이 있다. 이념적 보다는 행동적인 측면에서 근본주의나 정통주의에 대칭되는 신학을 급진신학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생겨난 해방신학 한국 신학자들에 의해 생겨난 것으로 민중의 한과 저항을 주제로 하고 있는 민중신학 차별받는 약자의 해방을 강조하는 아시아신학 제 3세계 신학 여성신학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개신교 내에서 보수-진보 갈등이 단순히 신앙적이고 신학적인 문제에 있어서만 생겨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양자 간의 종교의식 차이는 그대로 사회의식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개신교의 보수 집단은 정치 경제 사회 도덕 의식에 있어서도 보수적인 경향이 강하지만 반대로 진보 집단은 그러한 모든 의식이 진보적이어서 서로 긴장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개신교의 보수 진영은 항상 우파적 정권(이승만 정권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 이르기까지)을 지지해 왔고 체제의 수호자 역할을 감당했지만 좌파정권(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다. 반대로 개신교의 진보 진영은 우파 정권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지만 좌파 정권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특히 군부 독재체제 아래서 보수적인 개신교 집단은 그 체제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수구세력이었던 반면에 진보 집단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반체제 세력이었다. 비근한 예로 1987년 민주화 운동 때 보수적 교단과 교인들은 호헌을 지지했고 진보적 교단과 교인들은 개헌을 주장하며 강력하게 저항했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보수와 진보 진영은 국내의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 정세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있어서도 현저한 입장 차이를 보여 주었다. 예를 들면 보수 진영에서는 친미/반북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반면에 진보 진영에서는 반미/친북 성향이 두드러지게 보여 지고 있다. 그들은 통일문제 노사문제 여성문제 환경문제 등에 있어서도 차이를 드러낸다. 보수 진영은 한미 FTA를 지지하지만 진보 진영은 그것을 반대하고 있다. 보수 진영은 사형제도의 존치를 주장하지만 진보 진영은 그것의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이것은 최근 이명박 정권의 두 가지 화두인 대운하 문제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당연히 보수 진영은 그것들에 대하여 찬성하는 입장이고 진보 진영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의 보수 집단과 진보 집단의 신학적 사회적 견해의 커다란 차이가 한국교회에 내적인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조직적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 사실상 개신교 교단 간의 연합활동은 신앙적 신학적 노선에 따라 명확히 구분된다. 보수적인 교단과 교리는 그들끼리 진보적인 교단과 교리는 그들끼리 연합활동을 한다.

보수 교단들의 연합체로 대표적인 것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로서 여기에는 대부분의 보수적인 예장(합동) 계열의 교단들과 그 밖의 많은 보수 교단들이 가입해 있다. 그 외에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한국기독교지도자협의회 등 보수적 교단연합 단체가 있다. 그러나 보수적인 단체는 성격상 주로 연합하여 선교하고 집회하는 일을 한다.

한편 진보 교단의 연합체로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있다. 여기에는 예장(통합) 기감 기장 성공회 구세군 복음교회 등 소수의 교단이 속해있으나 결속력이 강하고 대내외적으로 한국 개신교를 대표하는 하나의 교회연합단체로 인정받고 있다. 이 연합체는 특히 과거 암울했던 독재정권 아래서 민주화 투쟁에 공헌을 했다. KNCC는 단순히 정치적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부조리 그리고 통일 및 환경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시민운동과 연대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교회의 분열이 심한 갈등의 형태로 그 역기능이 표출되어 왔다는데 있다. 원래 한국인은 다원적(多元的) 사고가 아니라 일원적 사고를 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다원적 사고가 다양성을 인정하고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라면 일원적 사고는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을 절대시하고 ‘다름’에 대하여 적대시하는 배타적 태도를 말한다. 한국사회는 오랫동안 획일주의 권위주의적인 유교 전통의 지배를 받아 왔고 단일 인종으로서 다양한 문화 풍속 관습 행위 유형에 적응하는 데 익숙지 못한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다름’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즉 다원화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국인은 ‘같음’에 기초하고 으뜸은 하나뿐이라는 일원적 사고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다른 가치나 이념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 것이다.

일원적 사고는 종교 영역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종교는 절대 진리를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독교처럼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있는 종교는 교리나 신학의 성격상 배타성이 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국의 경우 기독교(주로 개신교)의 종교적 배타성은 매우 강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배타성은 보수적인 교파일수록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교인일수록 강하게 나타난다. 우리의 종교(교파)만이 옳고 이것만이 진리이며 여기에만 구원이 있다고 보는 소위 특수주의(particularism) 성향이 유별나게 강한 한국 교회의 특성상 종교갈등 교파갈등 교회갈등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한국교회의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또 다른 요인은 앞에서 밝혔듯이 교파 사이에서 교회 연합단체 사이에서 보여 지고 있는 주도권 다툼과 이념 논쟁이다. 각 교파와 교회연합 단체는 그 지위나 권위에 있어 사회로부터 그리고 교계에서 대표성을 인정받으려고 치열한 경쟁을 해 왔다. 특히 교세나 영향력의 우위성을 내세우면서 한국교회의 주도권을 장악하려고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다른 교파나 단체를 비난하고 공격하면서 긴장을 야기하고 대립각을 세우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것은 교회의 분열과 갈등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교회안팎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하나의 주요인이 된다. 최근까지 부활절 연합예배도 보수-진보 진영이 따로 드리고 3.1절이나 8.15 기념행사도 따로 치렀던 것이 사회에는 어떻게 비쳐졌으며 교회에는 어떤 이득이 있었을까? 이제 우리는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할 때가 되었다.

4. 교회 연합과 일치의 원리: 코이노니아

한국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의 하나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 화해와 협력 조화와 통합이다.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적절한 개념은 코이노니아(koinonia)이다. 이 코이노니아는 기독교적 이론과 교회적 실천의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의 원리를 코이노니아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성서에서 코이노니아는 좁게는 친교(fellowship) 연합 혹은 교제(communion)의 의미로 넓게는 나눔(sharing) 공동체(community) 참여(participation) 연대감(solidarity) ‘함께 함’(partaking) 등의 의미로 쓰여 진다. 신학적으로 보면 코이노니아는 교회의 본질이며 사명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교회의 사명은 화해를 선포하고 치유하며 모든 분열을 극복하고 사람들을 하나님과의 연합으로 인도하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코이노니아이다.

코이노니아의 구체적 내용은 “사랑 가운데서 서로에 봉사하고 물질적 영적 선물을 주고받는 것”(롬 15:26-27; 고후 8:1-11; 갈 5:13) “서로의 기쁨 슬픔 고통을 나눔”(고후 1:6-7; 히 10:33) “필요한 때의 위안과 평화로운 일치를 위해 투쟁함”(갈 2:5) “하나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하나 됨”(롬 4) “복음을 모든 인간에게 설교함”(마 28:19-20) “하나님의 창조를 조화롭게 돌봄”(골 1:14-18; 롬 8:19-21) 등이다.

코이노니아의 개념과 가장 가까운 우리말은 ‘나눔’이다. 국어대사전에 보면 “나누다”는 뜻에는 여덟 가지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 (음식 따위를) “함께 먹다” (말이나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다” (즐거움이나 괴로움 따위를) “함께 하다” “같은 핏줄을 타고 나다”는 뜻들이 코이노니아의 의미에 가깝다고 본다. 즉 나눈다는 말은 물질적 정신적 감정적 영적인 것을 함께 하고 주고받는 대화 일치 공유 교제의 뜻이 있기 때문에 코이노니아는 ‘나눔’과 ‘하나 됨’ 이라는 의미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나눔’에 대하여 먼저 생각해보자. 기독교인의 삶은 영적 물질적 자원을 올바로 나눌 때 더욱 풍요로워진다. 이때 나눔은 봉사(diakonia)와 밀접하게 관계된다. 교회의 나눔은 가난한 자 필요한 자 소외된 자를 돌보고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으로 실천될 수 있다. ‘나눔’은 교회와 교회 사이에서도 이루어져야 하지만 또한 교회와 사회 사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나눔’의 실천은 연합을 통해 가장 잘 성취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함께 돌보고 함께 교제하기 위하여 교회는 연합해야 한다.

교회는 또한 ‘하나 됨’ 또는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 즉 신앙과 생활에서의 코이노니아의 한 원리는 ‘일치’라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일치’가 표현의 다양성(diversity)을 제거하는 획일성(uniformity)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매 세대와 장소에서 다양한 형태의 언어적 문화적 신학적 표현을 통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 개인이나 집단은 복음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실재에 대한 이해와 경험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다. 일치는 물론 다양성도 하나님의 선물이다. 따라서 개인 집단 문화의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다양성은 분열을 만들지 않도록 일치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고 일치는 그것이 획일성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다양성에 의해 풍부해져야 하는 것이다.

사실상 교회 안에서의 서로 다른 신학적 사회적 입장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어야 한다. 성서적으로 보면 원래 복음은 하나다. 다만 복음을 이해하는 관점과 그것을 해석하는 신학의 차이로 인해서 오랫동안 갈등과 분열이 있어 왔다. 따라서 기독교 복음에 대한 상이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교회 집단들이 나눔과 하나 됨을 지향하는 것이 코이노니아의 진정한 의미이다.

교회는 그 강조점에 따라 말씀의 선포를 우선시할 수도 있고(kerygma) 의롭지 못한 구조의 변혁을 목표로 하거나 봉사를 먼저 내세울 수도 있다(diakonia). 그러나 교회가 완전해지려면 그것들 모두가 필요하다. 전도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증언이며 정의 추구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증언이며 봉사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언이다.

선교에 대한 이해와 접근 방법에 있어서도 교회 사이에 차이가 있다. 인간성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점차 반영되도록 사회를 변형시키는 것이 선교의 과제(인간화 사회구원)라고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개인적 회심을 통한 개인의 변화를 무시하지 말도록 촉구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개인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를 우선적 과제로 본다(복음화 개인구원). 이들에게는 비인간적 조건과 불공정한 사회구조를 무시하지 말도록 촉구해야 한다. 따라서 복음화와 인간화는 선교의 두 축으로 이 둘은 상호 보완하는 관계를 가질 때 온전한 소위 통전적(holistic) 선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정론(올바른 믿음)과 정행(올바른 실천)의 관계는 어떠한가? 한국교회의 보수 진영은 정론에 집착하고 진보 진영은 정행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이 둘은 완전한 기독교적 코이노니아의 근본 조건이다. 이 둘은 분리될 수 없고 이원론적 관점으로 보아도 안 된다. 이 두 요소는 존재론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즉 같은 동전의 양면인 것이다. 정행 없는 정론은 공허하고 정론 없는 정행은 맹목인 것이다. 정행은 정론의 가시적 표현이고 정론은 정행의 함축적 근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참된 코이노니아는 정론과 정행의 조화이다. 이때 정론은 주로 신앙적 일치를 추구하며 정행은 실천적 나눔을 추구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분열되었던 교단 간의 통합에 대한 논의가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고 교회 내의 보수 집단과 진보 집단이 서로 대화하며 함께 손잡고 나가려는 시도가 생겨나고 있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준 대표적 사례가 바로 2007년 한국교회대부흥100주년기념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2007년 6월 17일에서 8월 31일 사이에 범 교단적으로 열린 이 대회는 한기총과 KNCC가 손을 잡고 예장(합동) 예장(통합) 기감 기성 기침 기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모든 교파가 하나 되어 “교회를 새롭게 민족에 희망을”이라는 대회 주제로 1907년 한국교회 대부흥운동의 100주년 기념행사를 함께 치렀다.

이 대회의 키워드는 선교 나눔 생명 일치 통일 회개 성령 등으로 한국교회의 보수 단체와 진보 단체가 중요시하는 핵심적 요소가 망라되었다. 1907년 영적 대각성과 연합운동을 기념하여 열린 상암 서울대회(키워드는 성령)이외에도 백만인 구령운동을 기념하는 세계 선교포럼(선교) 사회계몽 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회복지대회(나눔) 교육과 의료 사업을 기념하는 어린이/청소년/청년 대학생대회(생명) 여성운동을 되새기는 여성대회(일치) 항일운동을 기념하는 평화통일국제심포지움(통일) 사경회의 의미를 돌아보는 신학학술포럼(회개)이 열렸다. 서울 상암대회의 순서는 1부 회개와 성령 2부 일치와 통일 3부 선교와 평화 4부 나눔과 생명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다.

대부흥100주년기념대회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로 자랑스러운 한국교회의 역사를 되짚어 보았다. 1907년 대부흥운동이 개인의 회개와 각성으로 출발했으나 그것은 사회적 성화(성화)로 이어져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둘째로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대한 회개와 각성을 요청했다. 오늘날 물질주의의 만연 도덕성 붕괴 과학기술의 남용과 인명경시 풍조 소외계층에 대한 무관심 전쟁의 위협 등으로 얼룩진 사회 상황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회개와 각성을 촉구했다. 셋째로 한국교회의 공교회성을 확보했다. 이 대회는 KNCC 한기총 그리고 교단장협(한국교회연합을 위한 25개 교단장 협의회)이 주축이 되어 전체교회의 97%에 해당하는 주요 교단들이 참여했다. 넷째로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선포했다. 죄의 고백과 각성이라는 개인적 영성이 교회 일치와 갱신 사회와 민족의 공동체성 회복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Beyond 2007 비전’을 선포했다. 이렇게 그 기념대회는 1907년 당시의 성령의 역사를 되새겨 교회를 새롭게 하고 교회가 민족에 희망을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자고 다짐했다.

대부흥100주년기념대회에 대하여 길게 설명한 것은 그 대회가 보여주었던 상징성과 가능성 때문이다. 그 대회는 1950년대부터 극도로 분열되고 교파에 따라 교회연합 단체에 따라 교리적 신학적 노선에 따라 사회의식의 차이에 따라 심하게 갈등을 보여 왔던 한국교회가 처음으로 연합과 일치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리고 입장과 견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감대를 형성했고 근본적으로 한국교회가 코이노니아 공동체로서 ‘나눔’과 ‘하나 됨’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 한국교회의 희망적인 미래를 예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 연합과 일치가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고 지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모든 교회 교파 교회연합 단체의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따라서 다음에는 마지막으로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과제를 제시해보려고 한다.

5. 교회 연합과 일치를 위한 과제

한국교회가 앞으로도 교회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 내려면 몇 가지 노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 한국교회의 다양성을 서로 인정해야 한다. 모든 교회 모든 교파가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는 종교적으로 다원화된 사회다. 다양한 종교 교파 교회 신앙이 공존하고 있다. 다원화된 사회에서의 삶의 지혜는 ‘다름’을 존중하는 것이다. 종교적 가치나 신앙적 이념은 서로 다를 수 있다. 모두가 똑같아야 한다는 획일성은 전체주의에서나 통할 수 있는 것이다. 다르다고 하는 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 방식이 예수를 보는 눈이 단 한 가지만 있을 수는 없다. 서로 다를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다른 방식은 모두 틀렸다고 보는 것은 독선이고 오만이다. 다양하다는 것은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 최근 미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갈보리 교회(Calvary Chapel) 운동을 시작했던 척 스미스(Chuck Smith)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교파들의 위치를 압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자유로운 방식으로 예배를 드리거나 모두 엄격한 의례 중심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의례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의례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성령강림운동의 교회 안에서 발견되는 극단적인 감정주의가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래서 나는 그러한 감정주의에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감정적이고 싶으면 하나님의 성회교회로 가십시오. 의례적 예배를 원하면 장로교회로 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를 이용하시고 그 교회들에 복 주시며 나에게 나의 자리가 있는 것처럼 그 교회들도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들의 자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면 그 분이 여러분의 주님이요 구세주이시라면 여러분이 누구라도 좋습니다.... 나는 ‘혼자 옳은 사람’이 되어 하늘나라에 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한 하나님을 믿고 주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믿는다면 교리나 의례 신학적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는 스미스의 말은 옳은 말이다. 큰 틀에서 보면 다름은 단순히 취향의 차이 성향의 차이 적성의 차이일 뿐이다. 보수적인 사람은 보수적인 교회를 선택할 것이고 진보적인 사람은 진보적인 교회를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하거나 정죄할 권한은 없다. 다만 내 방식으로 믿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다양한 성향의 교회 교파가 있다는 것은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교회 연합이나 일치에 있어서의 전제 조건은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 내적인 갈등이 심화된 하나의 이유는 자신과 다른 신앙적 실천적 입장이나 노선에 대하여 비난하고 상대방의 약점이나 부정적인 측면을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교회(교인 교단)는 진보적인 교회에 대하여 뜨거움(가슴)이 없고 비 신앙적이라고 비판해 왔다. 반대로 진보적인 교회(교인 교단)는 보수적인 교회에 대하여 냉철함(머리)이 없고 탈사회적이라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그들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강점과 긍정적인 측면이 얼마나 많은가? 보수적인 교회는 신앙적 열정이 강하여 교회성장에 얼마나 기여했는가. 진보적인 교회는 정의감에 불타 우리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얼마나 공헌했는가. 한국교회가 자신과 성향이 다른 교회에 대하여 서로 그 공적을 치하하고 그것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 줌으로 교회의 역할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할 수 있다면 왜 갈등이 생겨날 수 있겠는가? 논자는 한국교회의 보수-진보 두 진영이 각각 나름대로 자랑스러운 교회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중요한 교회적 사회적 결실을 맺어왔다고 생각한다. 개인구원에 진력하며 개인 복음의 열매를 크게 거둔 보수적 교회 사회구원을 위해 싸워서 사회복음의 결실을 맺게 한 진보적 교회 한국교회라는 수레를 굴러가게 하는 두 바퀴가 아닌가. 이 두 진영은 서로의 약점을 채워주는 상보관계에 있다는 것을 오히려 고맙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연합과 일치를 이루어내기 위해서 해야 할 또 하나의 과제가 있다. 그것은 함께 일할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념과 신학을 떠나 손잡고 함께 나아갈 공감대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이때 전제 조건은 교리나 신학 문제를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리논쟁이나 신학 토론을 통해서는 결코 하나 될 수 없다. 그것들은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리는 갈라놓고 봉사는 하나 되게 한다.”(Doctrine divides service unites)는 말은 진리다. 교리는 다름을 인정하게 못하게 만든다. 교리를 전면에 내세우게 되면 결국 “우리만이 옳다”는 주장을 하게 된다. 따라서 교리나 신학을 통해 교회가 연합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그 대신에 ‘섬김’을 통해 한국교회가 ‘하나 됨’을 추구할 수 있다. 굶주린 사람을 먹이고 목마른 사람을 마시우고 나그네를 영접하고 헐벗은 사람을 입히고 병든 사람을 돌보고 갇힌 사람을 찾아가는데 교리 신학 노선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는데 보수-진보의 차이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나누고 돌보고 섬기는 일이라면 교회가 하나 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국내의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돌보고 굶주린 북한 주민을 돕고 재난을 당한 미얀마와 중국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은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다. 함께 섬기면서 한국교회는 하나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의 도덕성을 회복하는 일에 힘을 모을 수 있다.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반대할 교인 교회가 어디 있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 이전에 근본적인 문제는 도덕성의 위기이다. 부정부패와 탈법이 횡행하며 무질서와 무규범이 판을 치고 있다. 범죄와 일탈이 기승을 부리고 맘모니즘은 온통 사람들을 돈독에 오르게 만들고 있다. 향락과 사치 무절제와 방종이 통제 불능의 상태에 이르고 있다. 이기주의 개인주의는 공동체성을 파괴하고 있다. 가정이 파괴되고 직장은 밥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청소년은 방황하고 노인은 방치되고 있다. 과학기술 문명의 이기로 편리해졌고 경제성장으로 풍요를 누리게 되었지만 삶의 질은 떨어지고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낮아지고 있다. 생명을 경시하고 인격은 무시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빛과 소금으로서의 교회의 역할이 요청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사회적 책임을 외면할 교회 교인이 과연 있을까?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한국교회의 과제라면 이 일을 위해 교회가 힘을 모으는 것이 왜 불가능한 일일까?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한국교회는 하나 될 수 있고 또 하나 되어야만 한다.

좀 더 나아가 보자. 지금 한국 사회와 지구촌에는 너무 많은 문제들이 있다. 정치적 억압(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에 수많은 독재국가 안에)이 있고 경제적 불평등과 착취(지구 북반부와 남반부 사이에 각 사회의 부자와 빈자들 사이에)가 있다. 사회적 문제(가족문제 교육문제 인종문제 지역문제 범죄문제 장애인 문제 빈곤문제 질병문제 등)가 있고 환경문제(자연훼손 자원고갈 공해와 오염)가 있고 분쟁문제(국가 간 민족 간 인종 간 종교 간)가 있다. 한 사회 안에서도 계층 간 집단 간에 갈등과 긴장이 있다. 한 마디로 오늘날 한국 사회와 지구촌은 평화를 기다리고 있다. 인류평화와 상생(相生)이야말로 21세기 세계가 가장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대적 역사적 과제이다. 오늘날 커다란 영적 물질적 역량을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가 그 에너지를 하나로 결집하여 인류에 희망을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한국 교회의 연합과 일치 이것은 한국교회가 참된 교회가 될 수 있는 길이며 그 본질을 회복하는 길이다. 영혼을 구하고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길이다.

6. 맺는 말

비록 짧은 선교 역사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동안 한국교회는 수많은 개인 영혼들을 구원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고 희망과 용기를 주었으며 삶의 의미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사회적으로도 한국교회는 계층 간 갈등을 해소하여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냈고 질서와 규범을 확립하는데 기여했으며 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주도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해방 후 한국교회는 사분오열되고 갈등을 일으켜 교회 안팎으로부터 공신력을 잃었다. 주도권 다툼과 이념 논쟁에 몰두하면서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소홀히 함으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고 또 이를 실천하려는 진지한 노력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대사회는 다원화된 사회다. 따라서 다양한 가치나 이념 다양한 입장과 노선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은 옳고 그름에 근거해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서로 다른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보수-진보라는 양대 진영으로 나뉘어 심한 대립과 갈등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나 사회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 신앙적 교리적 입장이 서로 다르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인정해야 한다.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가 서로 다른 소리를 내지만 함께 어우러질 때 훌륭한 하모니를 이루는 것처럼 한국교회의 보수-진보 진영은 각기 자랑스러운 유산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라 조화를 만들어내야 한다. 보수적인 교회 전통은 한국교회 성장에 크게 기여했고 진보적인 교회 전통은 한국사회 민주화에 크게 공헌했다. 이 두 진영은 서로의 장점에 대하여 존경을 표하고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는 이웃을 섬기는 일에 한국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일에 세계에 평화와 희망을 가져오는 일에 뜻을 모아야 한다. 한국교회는 뜨거운 신앙적 열정이 있다. 엄청난 인적 물적 자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에너지를 한데 모아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이제 한국교회가 더 이상 다투지 않고 더 이상 갈라지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하나 되어 나눔과 돌봄의 사역에 동참하고 말씀(kerygma)과 섬김(diakonia)이 조화를 이루는 참된 코이노니아(koinonia) 공동체를 이루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