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능동적 수용과 기독교적 책임
-스택하우스(Max L. Stackhouse)의 공공신학을 중심으로-
이 장 형(백석대학교 교수 /기독교윤리학)
1. 들어가는 말
기독교의 공공(公共)성과 공공신학 세계화의 문제 등은 주목받는 윤리적 주제가 되고 있다. 최근의 기독교의 공공성과 관련한 담론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 것일까?우선 높아지는 윤리 의식 및 기대 수준을 들 수 있겠다. 창조한국당의 문국현이란 인물이 길지 않은 정치 입문기간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정당까지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몸담았던 유한킴벌리라는 회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그 회사는 한국에서 대표적인 윤리적 기업으로 손꼽히는 유한양행의 계열사로 윤리적 기업이란 유한의 이미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윤리와 경영이 깊은 연관을 갖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상황이다.
다음으로 세계화가 가시화 되면서 수반되는 부담감의 증폭도 논의의 중심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지구촌화 혹은 세계화와 관련된 논의가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더 이상 막연한 담론이 아니라 다양하게 실제로 전개되고 있으며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전개되고 세계화는 엄연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계화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과 거부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특히 단일민족임을 긍지로 여겨왔던 문화적 배경과 최근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된 경제 속에서의 여러 이상 징후들은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하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기업의 영향력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기업의 문제에 대해서도 이제는 윤리적 책무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종교 및 기독교인들에게도 윤리적 요구로 나타나고 있는데 기독교는 얼마나 이런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세계화는 신자유주의 및 미국 중심적 사고방식이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적절한 논의는 책임 있는 기독교가 되기 위한 윤리적 과제이기도 하다.
2. 기독교의 공공성과 공공신학
1)공공신학이란?
한국사회에서 교회 혹은 기독교인 개인이나 경영하는 단체나 기업 등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성숙되어 있는가하는 질문 앞에 우리는 여러 망설임을 갖게 된다. 이제 세계화의 과정 속에서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도 윤리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기업 및 경영윤리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사회에서도 공공윤리와 관련된 논의를 한 학자들은 많이 있지만 ‘80년대 초부터 기독교 및 교회의 공공성을 논한 스택하우스의 사상을 그의 주요 저서를 통해 살펴보며 세계화와 관련하여 기독교적 책임을 경제 문제를 중심으로 논해 보고자 한다.
우선 스택하우스는 기독교가 가장 좋은 상태에서 전 지구적인 시민사회에 무엇을 제시하여야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이 문제는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 요구되는 ‘선교적 명령’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스택하우스는 공공신학의 필요성을 이렇게 제기한바 있다. “오늘날 중요한 문제는 심오한 공공신학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깨어지고 분열되고 위협받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공공적인 행동들에 있어서 어떤 인간성을 요구하는가를 사람들은 깊고 넓게 알지 못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공공적(public)이란 것이 사적(private)의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으나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는 우리 전통 속에서 불분명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한국적 맥락에서의 논의는 혼란스러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전체적으로 스택하우스의 사상은 다음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도식화의 우려가 있지만 그의 저서에서 언급하고 있는 주요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세계화의 (역사적)내용
1.현세적 금욕주의
2.입헌적 정치 형태/민주주의
3.하나님의 형상/인권
4.정당한 법에 따라
운영되는 기업
5.하나님의 창조와
청지기 의식
6.사해동포적 복합적 도시문명 |
신학적 방향
에큐메니칼
정통적
보편적
복음주의적
선교적
|
공공신학의 지향점
사적영역 - 공적 영역
개인이해적-공리적인
특별한-일반적인
정치적인- 신앙적인
표면적인- 심층적인
비밀스러운- 밖으로 드러난
교회안에서만-시민사회에서
부분적으로-총체적으로 |
많은 논의를 통해 공공 혹은 공적(public)이란 용어의 의미가 이전보다 명료해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논란거리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스택하우스는 2007년에 새세대교회윤리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바 있으며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도 여러 회에 걸쳐 공공신학을 주제로 집담회를 개최한 바 있다. 그런데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 및 윤리와 연관되어 사용되는 ‘공공신학’의 논의에 있어서 얼핏 생각하면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무는 너무나 당연하며 전통적인 사회 윤리 및 정치 윤리 등의 논의에서도 충분히 다루어 온 것이 아닌가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러나 공공신학의 특징과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전통적으로 사회 윤리가 담고 있는 논의와 방법론을 공유하면서도 특유의 강조점과 신학적 전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공공성’을 강조하게 되는 모티프라고 볼 수도 있는 세계화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를 중요하게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공공’이란 용어는 사용하는 이마다 나름대로의 강조점을 갖고 다양한 의미로 사용하는데 그래도 최소한의 합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공공이라는 용어의 정의에 집착하다 보면 논의를 제한시킬 가능성도 있다. 스택하우스 (Max L. Stackhouse)가 언급한 ‘공공적’ 혹은 ‘공적’ 이란 의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1)기독교윤리는 공적인 이슈들과 내용들을 다루어야 한다. 2) 다른 종교인들이나 비기독교인들과 신학윤리에 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타당하고 도리에 맞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꿀 수 있다. 3) 신학윤리는 사회구조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다양한 공적인 삶의 영역들의 주제들을 다루게 된다.
우선 던지게 되는 질문들은 공공신학의 정당한 근거와 중요성이다. 그는 공공신학의 근거를 소위 ‘쿼드리레트럴’(guadrilateral)이라고 하는 네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성서(Scripture) : 성서는 기독교 신앙의 근원이자 규범으로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예언자들이 그들의 시대를 언급했다면 “우리는 우리의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말해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자의적으로 성서를 이해하거나 해석하는 것은 경계하면서 다른 원리에 의존해서 의미가 해석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2)전통(Tradition) : 아무도 뿌리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인간의 전통이 무너지는 것은 문화적 사회적 혹은 종교적인 집단 대학살의 희생이 되는 것이다. 대체로 전통은 처음에 신앙을 일으키고 성경을 발생시킨 사건에 의하여 명쾌하게 답변되지 않는 복잡한 문제들에 응답하려는 신앙의 노력으로 간주될 수 있다. 우리의 전통 가운데서 예배의 본보기를 발견할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기준을 명백히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볼 수 있다.
*사회에서 위압적인 권력의 정당한 사용과 부당한 행사를 구별하는 기준
*경제적 기술적으로 복잡한 문명 속에서 도덕적인 통전성을 갖고 살기 위한 기준
*다양한 환경에서 책임 있는 지도력을 갖게 하는 권위를 조직하는 기준
*인권과 실행 가능한 경제 제도의 기본 원칙을 개발하는 기준
3)이성(Reason) : 신학은 이성을 하나님의 실재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하는 인간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에 의해 은총의 선물로 존중해 왔다. 이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신앙과 신념의 주장은 신앙 문화 성 인종 언어 이념 그리고 심지어 좌뇌와 우뇌의 영역 경계를 포함한 수많은 경계를 뛰어넘어서 의미를 이해해야한다는 것이다. ‘올바른 이성’이란 인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한다. 성경과 전통이 등한시되며 여러 가지 경전과 인습이 서로 마주쳐야 하는 세계에서 이성은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공공적인 논의에 있어서 가장 절실한 기준이다. 공공신학은 ‘자유로운 사고’ 의심과 비판적 사상을 향해 열려져 있으며 비신학적인 학문으로부터 얻어진 통찰을 포함할 수 있을 것이다.
4)경험(Experience): 공공신학이 보여주려고 시도하는 진리와 정의는 긍휼의 하나님에게 바탕을 두었으며 듣기고 하고 말할 수도 있는 그러한 진리는 틀림없이 사랑으로 전달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여러 사건들에 대한 훈련을 통해 아무리 많은 것을 배운다 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그것들이 체험이란 인간적인 지식을 다스리게 해서는 안 된다. 공공신학은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이 아닌 공적인 차원의 긍휼의 필요성을 언급하는데 이는 성서 전통 이성과 비견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인 공공신학의 원리는 무엇인가? 스택하우스는 창조와 해방 소명과 언약 도덕법 죄와 자유 교회론과 삼위일체론 등을 언급하고 있다.이 원리들을 창조 소명 교회론 등의 내용을 중심으로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창조와 해방의 통전적 이해
스택하우스는 진화론자들과 좁은 의미의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근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한다. 과학적 명백함을 제시하고 있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에 앞서서 창조론을 갖고 신앙을 옹호하려는 근본주의자들의 시도 또한 오류임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정치적인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해방주의자들의 오류 또한 경계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기독교의 창조론을 공격하는 진화론적 태도에 대해 비판한다. 그들의 태도에는 1)세계는 우연한 것이다. 2)생명은 물질적 요인들에 의한 일정한 패턴을 갖고 있다. 3)인간성은 다른 짐승들에 비해 우위의 존엄성을 갖고 있지 않다. 4)변화라는 자연적인 과정은 신성한 목적이나 원리들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 5)종교적인 믿음이란 세상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알려고 하는 유행에 뒤떨어진 것이고 과학에 의해 대체 되었다. 그러나 과학적 사실에 앞서는 도덕적 기반을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스택하우스는 이렇게 말한다. 참으로 과학은 가장 깊은 수준에서 사실적인 묘사와 일치하는 것뿐 만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와 도덕적인 평가를 받아야만 한다. 생물학 우주론 사회문화적 발전의 궁극적인 신비들은 과학적인 진리들에 대해 해를 끼치지 않는 무시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이고 도덕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 신앙에서 역사를 지배하는 하나님께서 대부분의 역사에 있어서 사람들의 생활을 슬픈 상태로 영속시켜온 압제적인 형태를 바로잡는 사회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하나님의 정의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종교를 펼치려는 시도로 이런 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소멸될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2)소명과 언약
소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왜 존재 하는가’에 대한 답변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이미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했고 현대의 직업윤리에 있어서도 중요한 개념이다. 공공신학은 자신보다 위에 있는 권위와 목적을 직업과 관련시키는 가운데 더 나아가 자신 및 주변인들의 소명 실천의 방해적인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소명은 단순히 개인적인 삶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공공 제도의 다양성에 대한 의미와도 관련된다. 이는 사회에서의 다원성에 대한 신학적 신념 안에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소명의 잘못된 사용을 경계해야 한다. 즉 삶의 각 부분은 적절한 목적과 특별한 가치들을 갖고 있는데 대학이 정당이 되거나 교회가 법정이 되면 소명을 배반하는 것이 된다. 이와 관련해서 전제주의는 소명의 관점에서 정부가 모든 분야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 교육은 선전이 되고 산업은 군사력이 되고 법은 정치화되고 예술은 이념화되며 종교 또한 법으로 작용하거나 불법적인 것이 되고 만다. 결국 소명적인 임무와 직업적인 가치가 애매하게 된다.
또한 계약과 언약의 대비를 통해 소명의 의미를 부각시킬 수 있다. 성경적 전통 안에서 언약은 인간의 의지를 하나님의 정의에 결속시키고 상호 책임을 지는 조직 속에서 이웃들과 연대감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계약상의 관계에서는 인간의 관계를 지시하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이 없다. 이익이 되지 않는 시점에서 계약은 파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약은 그렇지 않다. “언약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대한 한계를 제시하시고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권한이 무엇이든 그리고 어떤 의지를 발휘할지라도 이런 한계에 종속된다는 것을 말한다.”
3) 교회론
교회론은 기독교의 정체성과 역동성을 드러내는 특징적인 부분이다. 스택하우스는 현대의 교회가 국가로부터 독립하면서 갖게 된 윤리적 약점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즉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공공생활과 설득 설교 교육를 통하여 정치적 경제적 삶을 인도하는 시도들로부터 신학의 분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분리는 선택적으로 공공적인 양상이나 제도의 구조 경향 가치 활동 등을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완성되지 않은 단체들을 형성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런 ‘자유교회’의 유산은 오늘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고압적인 종교적 전통들을 폭넓게 받아들이게 하였다. 그것은 유태교의 회당 이슬람의 사원 힌두교 성전 불교의 성전을 안전한 현대적인 공동체로 만들어 주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 인간 세계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갖는 것이 기대되고 있다.”
아울러 교회의 거룩성과 완전성에 대해서는 “그들의 모든 결점과 흠 때문에 조직화된 종교 교회 에큐메니칼 기관 문화교류 및 신앙적 교류의 대화와 만남의 장들은 우리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삶의 구조와 목적을 주는 신적인 의미들을 명백히 해주는 살아있는 증거이다”라고 지적하였다. 지상에서 경험하는 교회들을 마땅히 해야 하는 데에 비한다면 우리는 실망할 수밖에 없지만 인간들의 다른 사회적인 존재와 비교해보면 복잡한 사회를 위한 의미와 관심의 우주적인 전망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결국 교회를 중요시하지 않는 신학은 신학으로서의 정당성을 잃게 되는데 공공적인 문제를 다룬다 하더라도 교회의 특수성과 사명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2)기독교 신앙과 세계화의 관계
우리의 당면 과제인 세계화에 대해 신앙적으로 끌고 갈 책임이 기독교에 있다. 그런데 우리시대의 중요한 과제인 세계화에 대해 기독교인들이 잘 대처할 능력이 있는 것인가? 현 시대를 바라보면서 스택하우스는 세 가지 면에서 우려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로 세계화를 친미주의와 동일시하는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세계화는 경건한 치장을 통해 노골적인 이권을 감춘 제국주의적이며 신식민지주의적 정책을 끌어가는 미국주의적 의제로 보여 질 수 있다.” 즉 기독교 신앙과 미국의 정책을 동일시해온 이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시각은 기독교 자체가 변혁적일 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공격적이고 식민지주의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본 것이다.
둘째로 시민사회의 핵심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환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에 의한 경향에 대한 우려이다. 그들은 종교를 윤리를 위한 기반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시장 및 소비와 연관된 하나의 ‘주관적인 필요’로 간주한 것이다. 신앙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출발하지만 공공의 비전은 세계적인 역동성을 나오게 하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
셋째로 해방운동의 모델을 절대시하는 에큐메니칼적 견해의 반세계화적 입장이 주는 문제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나온다. “세계화는 전적으로 부도덕한 경제적 현상이며 세계화에 의해 부자들은 조직적으로 그들의 부를 증가시키는 반면 가난한 자들은 더욱 가난해진다.” 이런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그들은 ‘또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있어서 종교를 무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스택하우스는 “세계화의 해석을 위한 안내자로서의 태도로서 이같은 계급작 분석을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신학적인 오류라고 생각한다”고 자신 있게 역설하였다.
그렇다면 신앙과 세계화와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우선 신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제기되는데 스택하우스는 신앙이란 기본적으로 자체가 참되고 의로우며 동정적이고 돌봄을 베푸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신앙인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포괄적 세계관에 대한 확신이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세계화란 로버트슨이 지적한 것처럼 모든 지방 모든 민족 모든 국가 및 지구전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문화적 발전의 전 세계적인 집합체를 말한다. 이는 모든 지역적이고 지방적인 정황을 상대화하고 변화시킨다. 그러나 각각 독특한 방식을 지닌 지역적이며 지방적인 정황에 조화시키고 적합하게 바뀌는 포괄적인 정황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의 경우에는 국가들의 힘의 행사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문명’이란 단위가 세계를 재조작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특히 세계화의 과정에서 생기는 다원주의는 문명의 충돌을 야기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 하였다. 이렇게 보면 위기와 갈등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에 세계화의 향방이 달려 있다.
특히 현재의 글로벌한 시민사회는 어떤 국가의 통제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발전하고 있다. 미국 영국 유럽연합 등이 국제적인 법률을 보강하고 있지만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역할은 점점 커지는 상황이 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 신식민주의라는 틀 속에서 미국을 보는 시각도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영향력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스택하우스는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란 표현보다는 ‘패권적 영향력’이 적절할 것이라고 묘사한다. 그는 베트남전 등을 거론하면서 미국의 힘이 잘못 사용된 경우를 지적한다. 그러나 문화 부분 등에서 발생하는 미국의 영향력은 강요되기 보다는 초대된 것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세계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국의 역할이 불가피한 경우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미국의 영향력에 대한 변증은 힘의 역학 관계가 지배하는 국제적인 관계를 고려하는 현실주의적인 측면에서 상당부분 수용할 수 밖에 없는 분석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힘과 함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다국적 기업이다. 한 때는 제3세계의 적으로 이들을 묘사한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교회 가정 국가의 통제에 있던 경제 체제가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기업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러나 전 지구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런 기업들에 대해 많은 오해들이 있음을 스택하우스는 지적하고 있다. 오해는 세 가지 측면에서 설명되고 있다.
첫째로 다국적 기업들은 전혀 통제되고 있지 않다는 오해가 있다. 현 시대의 초국적-다국적 회사들은 한곳에서 시작했으나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법인조직의 유한책임회사이다. 이들이 전혀 통제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분명한 오해이다. 물론 기업을 유치하고 있는 나라의 법이 미약할 때도 있지만 기업은 시장과 경쟁자들에 의해 제어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시장과 경쟁자들은 국제 법 조직 국제 조약과 조정 기관에 등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 상호교류와 의존을 위한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하지만 탈 민족주의 시대에 외국인의 통제라는 불만을 야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기업은 종교조직을 제외하고는 국가의 장벽을 가장 효과적으로 허무는 것 중의 하나이다. 물론 저개발 국가에서 패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국제법 등에 의한 제약이 가해지게 된다. 국제적인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풀기위해서는 더욱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조사와 국제법적인 제약 등이 요청되는 것이 현실이다.
셋째로 역동적으로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는 세계화의 과정은 새로운 것인가? 이미 과거의 역사 속에서도 발생한 바 있다. 인류는 전에도 지구상 대부분의 지역까지 펼쳐져서 그 지역 특유의 종교와 문명을 발전시키고 다른 종교와 문명 등을 결합시키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물질적이면서도 관념적인 관심의 결합이 가장 잘 나타난 모습은 실크로드라고 할 수 있다. 실크로드는 역사 속에서 본격적인 최초의 세계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물질문명 종교 문화 등이 교류 되었고 물론 갈등과 파괴 등도 수반되었지만 그것은 ‘세계화의 과정’ 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크로드를 세계화의 선례로 보는 것은 인류의 문화적 교류와 전파에 대한 속성을 세계화의 동기로 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3)세계화의 전개에 대한 평가와 수용
과거의 예를 보더라도 세계화는 대부분의 경우 종교 및 문화와 함께 진행된다. 현 시대에 있어서 근본주의적 기독교와 유사한 이슬람의 확장 복음주의적 기독교와 유사한 불교의 급속한 성장은 성숙한 종교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세계화의 본질은 전 지구적 시민사회의 형성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는 시민사회를 유지하는 힘이나 능력에 대한 관계를 질문하게 한다. 스택하우스는 세계화를 일부 세계화 찬성론자들과 많은 반 세계화론자들의 시각인 ‘본질적으로 고삐 풀린 자본주의’라고 보는 것은 중대한 실수라고 지적한다.
그동안 세계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어 왔다. 그러나 대표적인 해석인 자본주의와 결부시키는 모델이든 사회주의와 관련된 모델이든 모두 한계가 있다. 이런 해석이 치중하는 경제적인 차원에서만은 이해 될 수 없는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부분과 관련된 부분이 세계화의 근본에 놓여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된다.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두 해석 방향에 대한 스택하우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자본주의적 해석의 연원은 아담 스미스(Adam Smith)에게까지 올라간다. 그는 신자유주의와 합리적 선택의 대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 부유해지는 사람들을 관찰하여 ‘노동 분업’이 기술을 전문화하고 교환하게 됨으로써 부유를 창출하는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윤에 기초하여 결정을 내는 데는 개인적인 이기심 즉 자신의 행복과 관련되며 넓은 의미로 볼 때 인간의 죄성과 관련된다. 그러나 효율과 이윤의 증대를 추구하는 과정은 결국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사회적 과정을 인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어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스미스는 종교를 인간 본성의 한 부분으로 보았고 영적 지침과 위로의 전달자인 성직자들에 의해 양성되어야 할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시카고학파 등 신자유주의 학파는 종교가 영혼을 무의미에서 구원하려고 하듯 육체를 빈곤으로부터 구원하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사람들은 사회적 물질적인 이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문제 등과 무엇이 정당한가 등의 문제 등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을 초월하는 전통의 영역에서 이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데 시키고 학파는 이런 부분을 놓치고 있다.
또 한 방향의 해석은 역사철학과 관련된 마르크스적인 분석이다. 그는 자본주의를 봉건주의 이후의 경제 발전의 단계로 보았다. 특히 종교를 ‘그릇된 의식’의 발현이라고 주장한다. 종교는 소외된 인간의 억압에 대한 한숨이자 탄식을 반영하는 것이며 보다 좋은 삶에 대한 인간의 희망을 허공에 투영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아담 스미스와 달리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어떠한 신의 경륜도 보지 않고 오직 불가지론적인 변증법 혹은 대립과 물질적 이익에 의한 계급의 분극화 만을 보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에큐메니칼 계열의 여러 문서들도 마르크스주의와 맥을 같이하는 환원주의적 경제 분석을 제시하는데 ‘대안적 세계화’ 문서 및 ‘돌봄의 경제’ 등의 문서는 유사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에 의한 연성사회주의라고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세계화와 경제적 세계화를 구분한다고 말하면서도 환원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정부의 능력을 대체하는 세계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려해야 하며 특히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풀게 되면 과장이나 오해가 있을 수 있다.
스택하우스는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세계화의 긍정성에 대하여 분명하게 재인식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한다. 우선 다음과 같은 현실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1) 세계화는 가난한자들을 더 어렵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중간 계급을 만들어 냈다.
2) 새로운 생산방식과 조직형태가 불평등이 증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화하고 사업화하는 경제 안으로 유입되었다.
3) 가장 절망적인 사람들은 국가통제 경제체제에 있는 사람들이다.
4) 국가경영 체제에 대한 신뢰는 봉건적 식민지주의적 파시스트적 페론주의적 공산주의적 경험에 의해 분쇄되었다.
5) ‘생명의 경제’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이주 패턴은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체제 밖으로가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6) 점점 많은 사람들이 세계화된 패턴의 삶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국제적이면서도 비교문화적인 근거에서 활동하고 있다.
스택하우스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신봉자들 유사 마르크스주의적 교회지도자들 전통적인 주류 경제학자들 모두가 인간 사회와 세계화 과정에서 실제로 작용하고 있는 신앙의 힘과 영향을 간과하고 있음에 주목하고 있다. 종교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도 여전히 중요한 독립변수로서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신앙에 기초한 목회와 봉사는 위기에 처한 혈연 공동체와 소작농들을 도와주어야한다. 아담 스미스는 종교를 인간의 본성과 연관시킨데 비해서 시카고학파 등에서 나타난 종교경제학적 이해는 종교를 하나의 상품 즉 소비의 대상으로만 설명하고 있다. 종교와 사회의 관계를 언급한 막스 베버를 돌이켜 보면서 세계화의 역동성에 있어서 발생하는 신학적 주제들을 놓치지 말아야 하며 이는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라고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스택하우스는 세계화의 추세에서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이 공동의 삶의 조직 안에 투입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세계화의 역동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신앙의 관계 중 특히 종교와 경제의 관계를 연구해야 한다. 스택하우스는 “모든 경제 체제는 역사적 사건들의 상호작용으로 생긴 제도들과 그 역사적 사건의 의미에 대한 종교적으로 고취된 윤리적 해석의 복합적인 틀에 뿌리를 박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지적을 고려할 때 기업자본주의는 일부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는 공평한 법체계를 갖는 입헌 정부에 뿌리를 두고 있다. 즉 다원주의와 종교의 자유 등이 보장되는 사회를 바탕으로 잠정적으로 최선의 경제체제를 이루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3. 세계화의 능동적 수용
하나님을 믿는 모든 자들은 공공적이며 세계화 기업 책임 경영 등과 관련된 문제에대한 기독교의 책임을 강조한 스택하우스의 사상이 오늘의 한국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스택하우스는 기업은 특별한 조직으로서 기독교 영성의 영향력이 미쳐야할 중요한 단체로 보고 있다. 경제 조직상 사회적 중심이 되는 7개의 조직 가운데 개인 가족 카르텔 종교조직 시장 국가와 기업이 있다. 국가와 기업은 신학적 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적 혹은 신학적인 맥락에서 기업의 문제를 다루려는 노력은 지극히 미약하였다. 현대의 신학은 분배상의 평등의 문제에는 상세한 피력을 하였으나 생산의 중심에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스택하우스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분배상의 평등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생산 수단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과 책임이 요청 된다. 교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재산 소유의 권리를 위해 국가 등과 싸웠고 결국 가부장 제도와 군주의 통제 밖에 있는 생산과 교역의 권리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이는 비영리 및 여러 조직의 선례가 되었다. 아울러 중세와 종교개혁기의 역사 속에서 교회의 조직은 대학 병원 최초의 민주적 조직들의 선례를 이루게 된다. 다원주의적 시민 사회의 발전에 교회는 기본적인 기여를 한 것이다. 초기교회의 모델인 ‘오이쿠메네’는 결국 전통적인 가족경제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사회체계를 이룬 것이다. 특히 토지보유나 농업생산 보다는 생산과 교역에 관계된 도시 민중과 연계되어 있었기에 가내 경제의 의무에 매여 있던 사람들을 넘어서고 있다. 그들은 당시 상황 속에서 ‘이교도’라고 불렸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결국 중세기에는 수도원 경제가 들어서면서 도시 단위로 가내 경제 및 국가의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일종의 기업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기업의 역사와 특징에 관한 언급은 한국사회에 있어서도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스택하우스는 그의 저서 ‘공공신학’에서 기업과 관련된 다섯 가지 모티프들을 제시한 바 있다.
이제 기독교적 삶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분야까지도 결국은 하나님의 주권 영역 하에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구체적으로 펴나가는 것이 신앙인의 책무일 것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기독교와 사회의 관계는 상당히 부정적인 갈등과 대립관계로 나아가는 측면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신학적 윤리적 공감대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막스 베버(Max Weber)는 한 사회의 종교적 특성이 그 사회의 경제발전 인권의 강조와 보호 그리고 다원적 시민사회의 발달을 촉진시키거나 억제하는 문화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하였다.
성숙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종교가 감당해야 할 책무가 있다. 종교와 사회가 상호 작용이 아닌 배금주의 및 정치적 권력이 우선하는 풍조를 일방적으로 주고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스택하우스는 기업과 관련된 경제제도를 크게 셋으로 나눈 바 있다. 1)국가주도형의 기업형태가 있는데 사회주의 경제나 파시즘의 형태로 구체화 되었다. 2)엘리트 가문이 기업을 주도하는 제3세계 형으로 족장 중심적인 형태나 카스트제도 등을 통해 구체화 되었다. 3)자본주의는 기업을 국가나 특정한 가문 등에서 분리시킨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형태이다. 적어도 자본주의는 봉건적이고 귀족적인 유산을 극복하고 있으며 개인의 인권과 자유의 신장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우월성에 대해 근본적인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평생직업’은 가능해도 ‘평생직장’은 불가능한 ‘지식산업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구시대적인 발상으로만 세계화와 관련된 양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세계화 과정을 바라보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를 향해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세계화’는 이념적인 차원에서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전개 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물질을 부정하거나 경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과 물질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세우려고 한다. 기독교 신앙에서 하나님은 창조주로 묘사되고 고백되고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 의해서 물질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는 근원적인 태도가 가능함을 인정한다. 그동안 사회윤리 및 정치윤리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방법에 의존하여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추구한 경향이 있다. 사회 및 시민단체들의 경우에도 기독교적인 신념과 가치체계를 공유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정치화된 경향이 많이 있었다.
기독교의 긍정적 역동성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고 신앙과 물질관이 통전적 교감을 이루지 못하는 한국교회를 향해 스택하우스의 공공신학은 좋은 신학 담론과 대안을 제공해 주고 있다. ‘세계화’는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하는가에 따라 상당히 다른 결과들을 야기할 것이다.
참고문헌
Anderson Victor. Pragmatic Theology : Negotiating the Intersections of an American Philosophy of Religion and Public Theology. Albany :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98.
Bacote Vincent E.. The Spirit in Public Theology : Appropriating the Legacy of Abraham Kuyper. Grand Rapids : Baker Academic. 2005.
Benne Robert. The Paradoxical Vision : a Public Theology for the Twenty-first century. Minneapolis : Fortress Press. 1995.
Bolt John. A Free Church a Holy Nation : Abraham Kuyper's American Public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 2004.
D' Costa Gavin. Theology in the Public Square : Church Academy & Nation. Oxford UK ; Malden : Blackwell Publishing. 2006.
Davis James Calvin. The Moral Theology of Roger Williams : Christian Conviction and Public Ethics.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Higton Mike. Christ Providence and History. New York: T&T Clark. 2004.
Stackhouse Max L.. Public Theology and Political Economy. Grand Rapids : Eerdmans.1987.
----------------- Creeds Society and Human rights. Grand Rapids : Eerdmans.1984.
------------------ God and Globalization 1 : Religion and the Powers of the Common Life.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0.
------------------ God and Globalization 2 : The Spirit and the Modern Authorities.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1.
------------------ God and Globalization 3 : Christ and the Dominions of Civilization. Harrisburg: Trinity Press International. 2002.
------------------ God and Globalization 4 : Globalization and Grace.
Thiemann Ronald F.. Religion in Public Life : a Dilemma for Democracy. Washington D.C. : Georgetown University Press. 1996.
새세대교회윤리연구소 편. 『공공신학이란 무엇인가』. 서울: 선학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