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 기간을 보내고 있는 가운데 지난 주 ‘순교의 영성’을 주제로 뜻 깊은 포럼이 열렸다. 이날 포럼에서 강조된 것은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한국교회는 과거 믿음의 선배들이 지녔던 순교신앙을 본받아 순교의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한 발표자는 “지금은 정치적 억압과 탄압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탄압이 감지되고 있다”며 물질적 풍요로움을 하나님처럼 떠받치고, 돈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하는 맘몬의 힘을 순교신앙으로 맞서야 할 상황이 되었다고 뼈아픈 말을 던졌다.

사실 우리는 순교신앙, 순교영성이란 말들이 어색한 시대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부유함과 안락함, 편안함이 신앙생활의 최고 가치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고난의 삶, 십자가의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성경적 가르침은 우리의 기억 저편의 공간에 가두어 버린지 이미 오래다.

이런 한국교회의 상황 속에서 ‘순교의 영성’을 논한다는 자체가 낯설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성장제일주의, 성전제일주의, 교단제일주의 등과 같은 맘몬의 힘에 빠져있는 한국교회의 병폐를 순교신앙으로 맞서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교회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 성도가 한국교회를 세 마디로 표현했다고 한다. 그것은 “모여라. 돈 내라. 건물 짓자”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곱씹어보니 결코 틀린 말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이미 한국교회의 성전 크기는 교회부흥의 척도요, 목회성공의 표본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디 이뿐인가. 한국교회의 대표적 교단들도 앞다퉈 외형적 성장에 치중하고 있어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3백만 성도운동, 2만교회운동, 5백만명 전도운동, 3백만 총력전도운동, 3천교회 운동, 2천교회 운동 등으로 그럴싸하게 포장했지만 이런 부흥운동의 중심에는 '숫자'라는 맘몬이 이미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 신뢰도를 잃어가고 있는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양’이 아닌 ‘질’이다. ‘양’을 추구하면 ‘질’은 퇴보하게 돼 있다. 하지만 ‘질’을 추구하면 ‘양’은 자연스럽게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양’만을 추구하려는 모습들은 가히 실망스럽기까지 하다.

한국교회는 순교신앙과 순교영성의 터 위에 세워지고 부흥 발전했다. ‘양’의 결과가 아닌 몇 명 되지 않은 순교자들의 ‘질’ 때문에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순절 기간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가진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는 가운데 맘몬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물신주의 풍조와 대항할 수 있는 ‘순교의 영성’이 마음에 녹아지기를 바라고 권력이 아닌 달콤한 유혹의 말로 우리를 현혹시키고 있는 맘몬이즘을 순교신앙으로 극복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