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로교총연합회(대표회장 전병금) 연합과 일치위원회(위원장 김명혁)가 최근 장로교 정화와 일치 세미나를 개최하고 장로교단의 분열의 원인을 분석하고 일치를 위해 수행해 나가야할 장로교단의 과제를 제시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최병두 목사(통합 증경총회장) 박종화 목사(기장 경동교회) 등이 강사로 참여해 현재 사분오열된 한국 장로교회의 문제점과 장로교단의 전통에서 벗어난 점들을 지적하는 한편 비민주적이고 권위주의적으로 운영되는 교회 제도에 대한 갱신 방안에 대해서도 제시했다. 이날 최병두 목사는 장로교 일치를 위한 과제 중 하나로 무인가 신학교의 난립 해결을 제시하고 현재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는 사이비 무인가 신학교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촉구했다. 또 이와함께 한해 5천여명이 양산되고 있는 목회자 수급의 심각성도 함께 지적했다. 다음은 최병두 목사의 '장로교 정화와 일치운동에 대하여' 강의 요약.
한국장로교의 일치의 측면
한국장로교는 짧은 시간에 많은 성장을 하였지만 그 반면에 짧은 시간에 많은 분열을 겪었다. 분열의 내용이 다양하겠지만 궁극적인 것은 신학적 색채는 아니었다. 그것은 부분적이고 이차적인 것이었다. 교권장악과 그리고 신학교고수와 같은 비본질적인 요소로 인하여 분열을 거듭하였다. 아쉬운 것은 이러한 비본질적인 요소가 둔갑하여 교회분열이 마치 신학적인 요인에 기인한 것처럼 확대된 것이다. 이제 한국장로교회는 진보이든 보수이든 간에 ‘하나의 교회’라는 ‘일치’의 의무를 달성해야 할 위치에 놓여 있다. 교회 일치를 어떻게 지향할 것이냐?에 따라 학자마다 목회자마다 그리고 일치의 방향을 찾으려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그간 한국교회 특히 한국장로교의 일치와 연합운동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일어났다. 바로 기구적인 일치와 연합운동 그리고 실천적인 일치운동이다. 어떤 이는 전자를 그리고 다른 이는 후자의 운동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저는 이 두 가지가 다 필요하다고 본다. 상호보완적이요 상호의존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론과 실천은 분리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간 기구와 실천의 다른 움직임이 얼마나 모순을 낳는가를 보았다. 이제 21세기의 한국장로교일치와 연합운동은 두 가지 차원이 상호보완적으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일치운동의 방향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기구적 일치운동
기구적인 일치운동의 방향점은 일치운동의 목적과 그 신학적 근거를 놓는 이론적 장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제반내용이 포함되어지겠지만 차이와 다양성을 ‘한교회’라는 일치의 차원으로 묶는 이론적 근거를 마련하는데 있다. 그런데 이 한국교회의 기구적인 일치 운동의 문제는 교회상층부의 수준에만 머물렀다는 것이다. 몇몇 의식 있는 지도자들의 만남과 교환이라는 수준에서 더 많이 진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천을 위한 구체적인 이론과 신학 그리고 교류의 차원까지 이루어 내지 못하였다. 또한 편향된 기구의 대립이 나타났다. 보수는 보수 진보는 진보라는 구조의 기구로서 일치운동을 전개시키었다. 그러다 보니 NCC와 한기총이라는 대결양상을 띤 기구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기에 저는 다양한 기구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본다. 일치의 기구를 위한 장이 제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전유물로 그리고 정치적 입지를 가진 자들의 의식확장의 장이 안된다는 것이다. 일치의 장을 위한 기구의 운동에는 제한을 두어서는 안된다. 논의 구조와 제도들이 다양하게 열려져야 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교단장협의회 또한 미래목회포럼등 전반적인 교회의 일치를 위한 기구들이 등장해야 한다고 본다. 논의의 구조의 다양성이 나타나야 건강한 기구의 모습이 창출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다양한 논의 구조는 신학교에서부터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해 본다. 교회적 차원의 현장이전에 신학적인 정립의 시기인 신학교시절부터 학생과 교수들간의 다양한 의견기구와 대화구조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기구의 다양한 구조들은 언제나 교회일치라는 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 일치의 목적이 바르게 이루어진 다양한 구조들은 건강한 일치운동을 이룰 수 있다고 본다.
실천적 일치운동
교회의 일치운동은 이론에만 머무를 수 없다. 현실의 장에서 이루어질 때 만이 진정한 일치운동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즉 공동의 경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실천적인 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과 행동으로 공동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실천적인 운동이 확대되어야 일치운동은 바르게 정립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공동경험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예배라고 본다. 이러한 효과는 일찍이 W.C.C의 B.E.M(Baptism Eucharist Ministry)문서에서 잘 나타나 있었다. 동방과 그리고 다양한 교파를 아우르는 일치의 역사가 바로 성만찬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러기에 한국장로교 더 나아가서는 한국교회의 일치운동의 확장은 예배로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배 용어중에 ‘Lex orandi Lex credendi’(예배가 신앙의식을 만든다) 있듯이 예배를 통한 일치운동은 그 어떤 기구나 다른 운동보다 빨리 이루어 질수 있다고 본다. 예배를 통하여 신학의 지향점 교회의 목적 선교의 방향 세상을 향한 책임의식등의 신학적 구조를 형성하고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였기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lex credendi lex orandi 신앙의식이 예배를 만든다) 그리고 선교의 장에서의 공동의무는 더할 나위 없는 일치의 장이다. 선교적 명령에 대한 각 교파의 헌신을 한 경험으로 이룰 수 있는 내용이 필요하다. 기구에서 움직이는 것도 좋고 교단간 선교책임자들의 공동연구와 노력 협동이 이루어진다면 참으로 좋은 일치의 효과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평신도에 이르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 평신도들이 공동으로 경험하고 이루어야할 환경 통일 문화 정치 경제정의운동은 이러한 일치의 운동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 큰 장이 될 것이다. 이날 박종화 목사는 '한국 장로교의 정화와 일치'를 주제로 강연했다. 박 목사는 "위로부터의 기구적인 일치보다 기초 자치단체 또는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연합을 시도한다면 더욱 효율적"이라며 아래로부터의 연합을 강조했다. 다음은 박 목사의 강의 요약.
동일한 신조 - 다양한 해석
한국 장로교단은 모두가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채택하고 있는 점에서 교리상 분열 요인은 이미 부터 극복하고 있다. 단지 「기장」과 「통합」이 각기 나름대로의 「신앙고백서」를 발표하여 쓰고 있는데 이것들은 장로교 내지 개혁교 전통에 충실한 추가 내지 보완적 신조라 판단되기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본다. 개혁신학 전통에 따른 장로교 신조는 종류와 분량이 엄청나게 많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여럿 중의 하나이다. 한국 장로교단들이 동일한 신조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조 내지 신학적 해석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담고 있음이 사실이다. 신학적 해석학의 다양성은 세계 장로교단들 모두에게 공통된 요인으로 존재한다.
신학적 노선의 “다양성 속의 일치”
신학적 노선의 차이가 교단분열을 일으켰다고 인정할 경우 그것은 성경말씀에 대한 해석상의 차이였다고 본다. 그 관점의 차이를 열거할 필요는 없지만 세계 어느 교회든 - 그것이 단일교회든 연합교회든 - 해석학적 입장의 다양성은 상존한다. 적어도 개혁신학전통 자체가 해석학적 폭을 넓게 가지고 있고 동시에 해석상의 차이는 오히려 장로교를 살찌게 하는 요소이다. 한국의 문제는 이런 다양성을 상호 용인치 못하고 자기들만의 해석을 절대화 하려는 데서 분열이 심화되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신앙생활의 연륜과 깊이있는 신앙적 증언을 모태로 하여 생성된 해석상의 다양성이 아니라 선교 초기부터 미국을 비롯한 서구 교회로부터 무비판적으로 전수받은 해석학적 입장을 금과옥조로 절대시한 데서 오는 갈등이 컸다고 본다. 실제로 과거의 교단분열 때와는 달리 현재는 해석상의 차이가 적대적 대결이 아니라 일치속의 다양성으로 상호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 있다고 본다. 이 경우에도 J.Calvin이 말한대로 어느 해석학적 입장이든 “항상 개혁하는 입장”(semper reformanda)에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이미 “개혁된 신앙”(reformata)의 요인을 불변의 것으로 치부하는 것은 개혁신학의 전통도 아니며 신학적으로도 옳지 않다.
에큐메니칼·에반젤리칼 대립의 해소와 화해
한국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교단적 분열의 요인 중에 에큐메니칼 노선과 에반젤리칼 노선의 갈등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 갈등의 원인과 발전과정은 한국 교회 스스로 만들거나 결정한게 아니라 철두철미 외부로부터 왔음을 인정해야 한다. 상황적으로 보면 한국전쟁 이후 한반도를 포함한 전세계의 적대적 냉전구조에 편승된 대결구조였다. 오늘날과 같은 탈냉전 상황에서 양축의 적대적 대결은 이미 그 상황적 존립근거를 잃은지 오래이다. 다른말로 표현하면 진보와 보수의 적대적 대립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오히려 상호보완의 관계로 승화시켜야 할 시점이다. 다만 확고한 신앙전통의 보수를 벗어난 진보는 허구이며 열린 미래를 향해 헌신하는 진보없는 보수는 수구일 뿐이다. 오늘 필요한 것은 허구와 수구를 극복한 바탕위에 진보와 보수의 창조적 결합을 이루어내는 일이고 그 구체적 실체를 장로교가 보여줄 수 있다고 본다.
'연합 장로교'의 성립가능성
갈라진 장로교단들이 만들 수 있는 기구적 일치는 “연합”장로교가 좋을 것 같다. 같은 의미라 하더라도 기존의 “합동”측과 ‘통합“측을 뛰어넘는 제 3의 ”연합’이 좋을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연합‘은 첫 단계에서는 호주 연합교회의 경우처럼 미완성의 진행형을 쓴 ”The Uniting Presbyterian Church"(가칭)가 좋을 것이고 상당한 연합의 전철에 따라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The United Presbyterian Church"(가칭)로 상승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기구상으로나마 완벽한 하나의 장로교로 우뚝 섰을 경우에는 ’연합“이라는 용어가 삭제된 「한국 장로교」(The Presbyterian Church in Korea : 가칭) 로 발돋음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연합장로교를 만들기 위한 출발을 우선 기초 자치단체 또는 좀더 확대한다면 광역자치단체 단위로 출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예컨대 「서울 연합 장로교」(The Uniting / United Presbyterian Church in Seoul)등과 같이 지역단위별 연합장로교를 구성토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연합/일치의 근본목적이 개혁신앙전통에 충실하면서 선교와 봉사의 사명을 보다 성실하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일치와 선교의 관계규명이 중요하다. 요한복음 17장(특히 21절)에서 성부와 성자의 하나됨 속에 온 인류가 동참하는 또다른 하나됨이 일치의 핵심인데 그 목적은 “세상이 믿게 하기 위함”에 있다. 일치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구원을 위한 일치인 셈이다. 구원을 위한 선교적 일치가 참된 일치의 목적이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때 지역사회 - 광역단위든 기초단위든 - 가 바로 선교와 봉사의 현장이고 중심에 신학적 성향이나 갈등을 넘는 공동체적 결속이 훨씬 수월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나중에 가서 필요하다면 장로교뿐만 아니라 다른교파 와도 연합하여 하나된 지역단위별 교회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지역단위별 연합 장로교회는 그 자체로 교회 법 내지 치리상 현재의 각 교단 총회의 권한과 의무에 준하는 기구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지역단위별 연합장로교회가 전국단위의 총회를 구성하여 국제관계 대 사회관계 해외선교와 봉사 등의 과제를 협의 결정하고 지역 연합장로교의 상호관계를 잘 발전시켜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구도라면 그에 걸맞는 「신학대학원」이 자리를 해야 한다고 본다. 필요하다면 지역별 연합장로교마다 목회자 양성의 신학대학원을 둘 수 있을 것이고 각 신학대학원들은 학점교류는 물론 강사 및 교수 교류를 통한 신학연구와 목회준비에 있어서의 연합정신을 모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3년간의 M.Div3과정 가운데서 지역연합장로교 소속 신학대학원 등록이 최소한 2년은 되어야 그 지역 교회에서 목사 안수 받을 수 있도록 하면 나머지 1년은 타지역 신학대학원에 자유로 등록하여 배우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뉴스 기사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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