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모던 문화와 설교
1. 21세기 포스트모던 문화
첫째로 포스트 모던인들은 삶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고 경험하고 싶어한다. 특별히 경험하고 싶어한다(경험문화).
둘째도 포스트 모던인들은 상호의존적이며 상호작용하는 기질 안에서 생각하고 살아간다. 오늘의 문화가 상호작용이 가능하고 참여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문화 디지털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상호작용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무엇을 소유하거나 보고 즐기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 가는 일에 참여하기를 원한다(참여문화).
셋째로 포스트 모던인들은 이미지와 은유로 사고한다. 그들은 문자나 교리를 통해 메시지를 이해하기보다는 이미지나 은유를 통해 메시지를 이해한다. 왜냐하면 오늘의 문화가 문자문화가 아니라 영상문화이기 때문이다. 문자문화에서는 교리가 메시지였고 메시지는 단어 속에 있다. 그러나 영성문화에서는 내 몸에 미친 영향이 메시지이고 메시지는 이미지와 음향의 진동 속에 있다. 문자문화에서 추종자들은 말씀을 들었지만 영상문화에서 청중들을 목소리로 듣는다(Image-driven).
넷째로 포스트 모던인들은 아주 개인적이면서도 동시에 공동체적인 경험을 하고 싶어한다. 이들은 극단적인 개인주의에 환멸을 느끼며 이웃과 도덕적 영적 가치의 연결 구조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 포스트모던 문화의 중심에는 관계가 놓여 있다(connected).
“포스트 문화란 EPIC 문화이다. 경험(Experiential) 참여(Participatory) 이미지(Image-driven) 그리고 관계(Connected)를 의미한다.“
(레너드 스윗 ‘영성과 감성을 하나로 묶는 미래 교회’ 김영래 역(서울: 좋은씨앗 2002))
2. 서양적 사고와 동양적 사고
서양의학은 대부분 수술에 의존하나 동양의학에는 수술이란 없고 통합적 치료방식을 택한다. 40개의 시리얼을 놓고 선택하도록 하는 나라는 미국 밖에 없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대신 비빕밥이나 짬뽕 식을 좋아한다. 동양의 젊은이들이 서구화되면서 개별식 햄버거 피자 같은 것을 좋아하게 되지만 미국에서는 지금 동양식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가고 있다.
서구 논리적 사고의 고향은 고대 그리스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신과 동양의 정신문화를 비교하므로 오늘날 비평학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고 그 결과는 무엇인가를 규명해 보려고 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인간을 독특한 특성과 목표를 가진 상호 개별적인 존재‘로 파악했다. 그리고 어하여 결정되었다.
그리스인들은 늘 세상의 본질에 관심이 있었다. 플라톤은 이데아만이 참된 실제이며 세상의 의미에 대하여 감각에 의지하지 않는 논리적인 접근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감각과 논리가 대립될 때에는 당연히 감각을 무시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직선적(linear)' 사고와 ’이것이 아니면 저것(either-or)'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집착했다. 현대 용어로 말하면 ‘디지탈적 사고 ’이다.
이에 반하여 동양은 그리스 정신과는 상반되는 경향이 짙다. 예를 들면 그리스에서는 개인의 자율성이 중요했다면 동양에서는 조화로운 인간관계가 중요하다. 그리스 학문적 특징은 ‘사물 자체’를 분석하는 일과 주의(attention)의 대상으로 삼는 데 반하여 동양인들의 사고는 우주가 상호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사물들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거대한 물질이라고 보듯이 모든 학문에 있어서도 개별적인 조합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진 것으로 본다. (리처드 니스벳 저/ 최인철 역 ‘생각의 지도’. 감영사. 2003. 참고)
특히 유대교적 사고에 있어서 구체적인 행위와 관련되지 않은 즉 실용적이지 않은 순수한 의미에서의 ‘앎’이라는 것은 없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리스인은 개별 사물과 그 속성에 집착하므로 기본적인 인과 관계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뇌의 활동으로 서양과 동양의 사고의 차이를 부분한다면 동양인은 우측뇌(The right hemisphere)를 주로 사용하고 서양인은 좌측뇌(the left hemisphere)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결과로 오늘날 성서학에서 서양은 비평학을 낳게 되었고 동양은 서양식 해석학에 끌려가고 있다.
분석의 결과는 진리를 다 수용할 수 없고 논쟁만 일으킬 뿐이다. 이야기란 사건전체를 가능한 한 수용하여 전달하는 기능을 지닌다. 많은 신학도들도 두 사상의 갈등 속에서 방황하다가 두 가지를 적절하게 조화시킬 방법을 찾지 못하고 결국은 한 쪽에 편중된 연구방법을 가진 채로 신학교를 떠난다. 분석적 방법은 학문적이라고 하고 동양적 방법은 비학문적이라고 생각한다.
3. 전달시대에 우리의 문제
본인이 대학원에서 신약학을 전공하고 대학생들을 위한 성경공부를 시도했으나 실패하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부터 전달(delivery)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발견한 것이 story-telling이나 narrative 방법이다. 결국 교인들은 분석적인 방법으로 성경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1) 전통적 설교의 위기
미국에서 60년대 중반부터 설교의 위기론이 제기되었고 그 위기는 청중과의 communicational breakdown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Two way communication“을 강조하는 설교학이 등장하였다.
2)쌍방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해서 반드시 대화적 스타일(dialogical style)이 되어야 한다기 보다는 비록 일방적(monologue) 스타일 설교일망정 그 가운데 대화적 원리(dialogical principle)가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2) 새 시대의 도전으로부터
New age 시대는 분석적 시대이다. 다양성을 추구한다.
일방적이고 직설적으로 설득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참여하고 느끼고 경험해 보고 싶어 하는 시대이다. 또 스스로 결정하기를 원한다. 뉴 에이지 시대는 영적인 것을 탐구한다. 그렇다고 해서 신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에겐 깊이 알게 해주어야 하며 동시에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여기에 걸맞는 새로운 설교 방법이 나와야 한다.
4. 헬라적 사고에서 히브리적 사고로 전환
히브리적 Narrative의 특징:
히브리적 내러티브의 특징은 poetics이다. 시(詩)는 사실을 적나나하게 다 보여주지 않는다. 시인이 느끼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 그것을 통하여 독자는 사실을 그려나간다.
성경에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아브라함의 인생 여정을 다 보여주려는 게 아니다. 성경이 보여주려고 하는 것만 보여준다.
1)성경의 내러티브는 반복과 변이(variation)의 사용법을 통하여 이뤄진다.
이런 방법을 성경은 다양하게 사용하는 데 이건 군더기가 아니고 두 가지 일이나 말의 비숫 한 점이나 그 차이에 주의 기우리라는 뜻이다. perception과 interpretation의 key이다.
2)성경의 narrative는 space에 영상을 투사한다.
3)성경 내러티브는 처음과 나중에 간단한 언급을 한다. 그 점을 주의해야 한다.
4) 전개되는 방법과 언어 사용에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반복되는 단어에 주의를 기우려야 한다
5)구체적인 설명이 아니라 ‘깨달음’이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가 보기 원하는 것을 본다.
6)‘how much to include and how much to omit.
7)Image를 강조한다. 사울-키가 큰 사람(삼상 9:2절)-baggage 안에 들어갔다고 함.
.
히브리적 내러티브의 예
히브리적 내러티브의 예: 눅 19:1-10
느혜미야 2:1-10 18: 성경 저자들의 기술방법은 냉혹하게도 자기의 감정이나 해석을 자제하고 사건 자체만을 그대로 전하려고 한다.
성경은 이미 포스트 모던 시대의 사고로 기록된 책이다.
이 시대를 효과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특징-
가. Post-modern 시대의 특성
1)강요받는 것을 싫어한다.
2)지루하게 설명하는 것을 싫어한다.
3)흥미 없으면 channel를 돌리고 만다(net-mind)
4)이미지로 전달하고 받는 시대
5)권위를 반대한다.
6)변화에 민감하다.
7)전달에 관심을 가져야 할 시대(멀티미디어 시대)
이런 문화적 특성 속에서 이전의 기독교는 점차 그 신뢰를 잊어간다.
이 어령 교수의 ‘디지로그’ 론
한때 ‘혁명으로까지 불리며 떠들썩하게 등장했던 디지털 기술은 그 부작용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다시 아날로그 감성을 불러들이고 있는 데 정보(情報) 말 그대로 정감 있고 온기 있는 디지털 문화를 이룰 때 우리는 후기 정보화사회의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늘의 진정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디지로그적 시대정신이 필요하다.
인간 두뇌는
공감적 머리-Analog-남의 아픔을 느낌-정으로 산다-우측뇌.
체계적 두뇌-digital-흑백논리로 산다. yes or no.-좌측뇌
한국인들 음식을 나누는 것은 단순히 먹거리를 나누는 게 아니라 마음과 감정을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들에겐 먹는 문화가 중요하다.
예수님도 마지막 논리적으로 학습을 정리한 게 아니라 음식(성찬식)을 먹으셨다.
진리는 씹을 수 있어야 한다. 성찬식은 진리를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나를 삼켜라는 뜻이다.
빵 포도주는 understanding의 밀도를 말한다.
비유-이야기엔 윤기가 있다.
bit를 먹고 사니까 컴퓨터 속에서 나오지 못한다. 자폐증 환자처럼 된다.
어떻게 디지털로만 살 수 있는가? 서양은 색동저고리처럼 갈라서 분석해야 하지만 무지개는 색깔이 분명하게 갈라지지 않는다. 계단은 디지털이지만 언덕은 디지털로 올라갈 수 없다. 아날로그로 올라가야 한다.
아날로그의 예
아이가 4학년이 되면 도시락을 싸간다. 아이가 학교 가서 먹으려고 하니 꽁보리밥이다. 창피해서 먹을 수가 없어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간다. 어머니가 왜 안 먹었느냐고 물을 때 아이는 어머니의 가슴 아플 것을 생각하며 배가 아파서 먹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마음을 읽는다.
다음날 아이가 도시락을 펴보니 하얀 쌀밥이다. 어머니가 이걸 구하려 고생한 것을 생각하니 먹을 수가 없다. 어머니는 이걸 보구 왜 먹지 않았니? 엄마는 괜찮다. 너만 잘 먹고 건강하면 된다고 말하면서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 붙들고 운다. 이것이 아날로그 정신이다.
디지로그는 지성과 감성이 결합된 통합윤리이다.
1. 헬라적 사고와 히브리적 사고
헬라어의 동사는 정의를 내리는 경향을 띄고 히브리어 동사는 서술적 내용을 보여주는 움직이는 언어라고 함. 전통적 설교는 헬라 수사학으로부터 유래한 논쟁의 정적 모델에 기초하여 명제와 아이디어의 집합 결과는 인간의 인지적 측면에만 초점을 맞춘 정적인 시스템이다. 그 결과 설교자와 청중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고 있으며 청중에게 들려지지 않는다(David Buttrick).
우리는 지금까지 헬라적 내러티브(논리)에 의하여 길드려져 왔다. 그러나 이제는 히브리적 내러티브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성경을 제대로 설교할 수 있다. 성경은 히브리적 내러티브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헬리인들의 사고가 아이디어 사고(Thinking in idea)라면 히브리민족은 스토리로 사고한다(Thinking in story-동양적 사고임:예 무슨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우리 옛사람들은 ‘물이 들어와야 배가 나가지’라고 했다.). 로마서도 히브리적 내러티브로 기록된 서신이다. 히브리 내러티브의 특징은 story이다.
전통적 설교-헬라 수사학에 근거 이야기 설교-히브리적 사고에 근거.